[성호준의 세컨드샷] 백스핀 적은 볼로 바꾼 우즈 … 세월 앞엔 호랑이도 무기력?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407호 23면

2011년 나이키 골프는 야심 차게 신제품을 발표했다. 기존 고무가 아니라 ‘레진’이라는 신소재를 코어에 사용한 공이었다. 나이키 본사의 볼 담당 책임자인 록 이시이는 한국에 찾아와 따로 설명도 했다. 그는 “드라이버 소재가 나무에서 메탈로 바뀐 것에 비견될 혁신적인 제품이다. 거리가 늘어나고, 공이 똑바로 간다”고 했다. 그는 매우 열정적으로 공에 대해 얘기했다. 기자의 얼굴에 침도 좀 튀었다.

그러나 기사를 안 썼다. 얼굴에 침이 튀어서가 아니라 타이거 우즈가 새 공을 안 쓸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었다.

타이거 우즈

우즈는 장비에 매우 까다롭다. 후원사인 나이키에서 새 제품이 나온다고 그냥 쓰지 않는다. 주는 대로 사용하는 로리 매킬로이와 다르게 우즈는 장비를 매우 세심하게 테스트한다.

나이키는 우즈라는 수퍼스타 덕도 봤지만 그런 우즈 때문에 낭패도 봤다. 우즈가 타이틀리스트에서 나이키로 공을 바꾼 지 얼마 지나지 않은 2000년, 소비자단체 등이 우즈가 실제 공을 사용하지 않는데 그 공을 쓰는 것처럼 광고해 나이키가 불법적인 이득을 얻었다고 소송을 걸었다. 나이키는 우즈의 공은 시판되는 공과는 약간 다른 공이라고 인정했다. 나이키는 “골프계에 흔한 관행”이라고 했지만 타이틀리스트는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했다.

우즈는 레진이 나온 지 3년이 넘은 올 시즌에도 회사의 기대를 저버리고 원투어 D라는 모델을 썼다. 레진과 함께 공 시장을 확 바꿔 버리겠다는 나이키의 야심은 실현되지 못했다. 우즈는 대회 연습 때도 자신이 쓰는 공만 사용했다. 미국과 유럽의 정상급 남자 투어의 경우 연습장에 타이틀리스트와 스릭슨, 브리지스톤 정도가 제공되는데 우즈는 자신의 공을 따로 가져간다.

우즈가 새 제품에 마음의 문을 잘 열지 않는 것은 그의 마초 성향과도 관계 있는 듯하다. 그의 코치를 했던 행크 헤이니는 “우즈가 (자신의 힘이 강하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 가장 스핀이 많이 걸리는 볼(거리가 덜 나가는 볼)을 쓴다”고 했다. 나는 이 공으로도 너희만큼 거리를 낼 수 있다는 걸 과시하기 위해서라는 해석을 할 수 있다. 우즈는 하이브리드를 쓰지 않는다. “너무 높이 떠서 바람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라는데 기술의 도움을 받는 것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 인상도 보였다.

우즈는 제품이 나온 지 4년이 다 된 지난 12월 초 레진 볼로 바꿨다. 그가 쓰는 모델(RZN블랙)은 레진 공 중에서 가장 스핀이 적게 걸린다고 한다. 백스핀이 적다는 말은 드라이버 거리가 더 나간다는 얘기다.
그래서 흥미롭다. 우즈의 생각이 많이 바뀐 것 같다. 그는 최근 이런 말을 가끔 한다. “마이클 조던이 노장이 되면서 점프력으로 수비수를 압도할 수 없게 되자 페이드 어웨이 슛을 던지면서 최고로 남았다.” 우즈는 거리에서 젊은 선수들에게 뒤지고 있다. 뒤로 물러나면서 시도하는 페이드 어웨이 슛을 던지는 우즈를 감상할 시기가 된 듯하다. 공은 그 상징이다.

성호준 기자 karis@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