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이 병들고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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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대학적령기의 자녀를 둔 가정에서는 웃지못할 희비극이 비일비재한 것같다. 그것은 어느 대학에 무슨과를 지망해야만 내가 원하는 공부를 해서 앞으로의 진로를 개척할수 있느냐의 관심이 아니라, 무슨 수를써서라도 경쟁자가 적은대학, 적은 과에 무조건적으로 지원해서「일단 붙고보자」는 식의 「대학맹종주의」 때문이다.
이는 다소 실력이 좋고 나쁜 차이가 있는 선에서도 마찬가지인 것같다. 왜냐하면 현재 K대학교 의과대학에 재학중인 모 학생이 뒤늦게야 2중지윈서를 접수한게 밝혀져 학교당국으로부터 권고자퇴를 받게 되었고 이에 대해서 학부모측에서는 법원에 솟장을 접수시켰다는 보도만 듣더라도 알수 있다. 이러한 대학가의 병리현상은 정말 쉽게 웃어넘길수만은 없는 심각한 어떤 조짐같아 보인다.
「진리탐구」와 참된「자유정신」의 도장으로 상징되는 대학이 들어가기도 전부터「눈치」와「타협」과「도박심리」로 먹칠해져 버린다면 그렇게 설정된 문 안에서 무엇을 얼마나 소신껏 연마할 수 있을까? 진정한 스승을 만나고 진정한 인생의 동지를 만나는 대학생활이 될 수 없다면 사실상 국·공·사립을 총망라해서 우리가 치르는 등록금은 너무나 사치스런 낭비다.
심지어는 어느 과를 지망해야만 앞으로 「교수」로 남을수 있느냐는 재산이 진학의 열쇠이기도 하다니 『교수는 인격 그자체가 아니라 직업 그 자체다』라는 말이 학생들 입에서 오르내림직한 일이다.
물론 어느대학 출신, 혹은 어느대학 동문이라는 간판만 가지고도 터무니없는 대우를 받던 시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또 지금도 그러한 일류병 콤플렉스가 깡그리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려나 최소한 오늘의 사회가 요구하는 진정한 일꾼은 여전히 창의력과 자주정신을 가진 실력자가 아닌가? 대학 배지만 달고 폼 재던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어느 대학 어디에 있든 대학생활에 부여된 4년이라는 세윌은 어떻게 뛰고 노력하느냐에 따라 남은 장래가 좌우된다고 나는 굳게 믿는다. 즉 4년동안 어떻게 최선을 다했느냐는, 60평생어떻게 살 수 있느냐의 키가 달려있는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는 자기의 인생과 대학, 흑은 전공과목의 필연적 연관성을 미처 따지기도전에 입시 도박판에 말려들고 취직시험에 급급한 것 같다. 어디 그뿐인가? 전공과는 관계없는 취직에 일단 성공하면 그 다음 결혼·승진·경제등의 끝없는 압박감이 젊은 소시민을 따라다닌다. 이러한 사회현상을 젊은 시인 김광규는「작은 사내들」 이라는 시에 비유한 적이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문제는 대학가가 병들고 있다는사실, 곧 우리의 양심, 우리의영혼이 병들고 있다는 조짐인것이다. 적어도 대학은 그 시대의 양심이며 그 시대의 맑은공기 역할을 해왔고 또 해야한다. 「시대의 다림줄」로서의 역할을 잃어버린 대학이라면 쓰레기 하치장보다 더 독한 냄새만 남길 것이다.
나는 이리한 현장을 단순한 사회현상으로 돌려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이 기회에 철저히가정교육의 밑바탕을 명상하는반성의 기회로 삼고 싶다. 고정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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