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 민한총재 회견요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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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국민의 움츠렸던 마음이 이제 한결 화합의 분위기에 휩싸이고, 지난 2년 동안 얼어붙었던 맘은 서서히 녹아 확실히「해빙의 연대」83년을 맞고 있다.
나는 최근 한 달간 지방을 순회하면서 민한당에 대한 국민의 기대가 얼마나 고조되고 있는가를 실감했으며, 이 같은 기대와 지지가 높을수록 수권정당으로서 우리의 책임이 크다는 것을 절감치 않을 수 없다.
금년은 대통령선거를 5년 앞둔 해라는 점에서 참다운 민주적 정권교체를 위한 밑바탕이 되는 역사적 과제를 완수해야하는 해가 돼야겠다.
나는 헌법이 보장하고 대통령이 공약한 88년의 평화적 정권교체가 그대로 의심 없이 이루어질 것으로 확신하지만 많은 국민들은 과연 그대로 이뤄질까 하고 의문을 갖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평화적 정권교체는 구호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민주주의의 토착화라는 국정지표도 어느새 시들해지지 않았는가.
우리는 금년을 참다운 민주주의를 제도적으로 확립하기 위한 민주제도정비의 해로 결정하고자 한다.
대통령이 작년 여름 청와대 회담내용을 일부나마 받아들인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하며, 다른 문제들도 비록 시일이 걸리더라도 우리의 요구를 밭아들일 것을 믿는다.
이 같은 기본적 요건들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평화적 정권교체는커녕 아무도 민주주의사회라고 믿지 않을 것이며, 여기에서 나오는 불신은 드디어 권력의 정당성 자체를 의심하기에 이를 것이다.
국회에서 국민의 대변자가 정부를 아무리 비관해도 국민이 들을 수 없는 상황 속에서는 대화정치나 공개정치는 어려울 것으로 생각한다.
이 자리에서 지난 2년 동안 정부의 잘못을 새삼 규탄하고자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지난날의 그 쓰라린 고통을 되씹기 전에 우리가 오늘 해야할 일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근로자와 농민들은 물가안정의 희생이 되어왔다. 죄 없는 정치인들은 묶였고, 양심 있는 지성인들은 움추림을 강요당했다.
특혜재벌과 부패관료들은 아직도 뿌리가 뽑히지 않고 있다. 이모든 것을 정상화시키는 길은 민주주의의 회복밖에 없다.
우리 당은 정치적 혹한 속에서 뿌릴 씨앗을 간직하고 안타까운 농민의 심정으로 민족역량을 키워왔다.
비록 얼음 속에서라도 씨앗을 뿌려야한다는 성급한 채찍을 받아가면서도 해동의 날씨를 기다려왔으며, 이는 씨앗을 얼리는 것보다는 쟁기와 보습을 갈고 닦는 것이 우리가 해야할 일이었다.
정권교체의 날은 멀지 않았다. 우리는 우리의 자세를 더욱 튼튼히 다지고 국민의 소리라면 그 소리가, 아무리 작은 소리일지라도 귀기울여 들을 것이며, 우리에게 어떤 고난이 닥치더라도 이 시대와 민족이 갈망해온 참다운 민주주의에의 토대를 구축하는데 최선을 다할 것이다.
나는 정부와 여당에 진심으로 간곡하게 촉구하고자 한다.
참으로 평화적 정권교체를 원한다면 삼척동자라도 확실히 믿을 수 있도록 우리가 요구하는 제도개선에 성의를 가져야할 것이다. 여당일변도의 정치풍토 하나만이라도 고쳐 국민의 오해가 없도록 하기를 바란다.
대통령이 국회에서 금년도 시정방침을 많이 밝혔지만 국민들의 뒷받침이 없다면 이뤄질 수 없다고 본다.
국민들로 하여금 난국을 인식하고 뒷받침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하려면 정부가 민주주의로의 길이 성취되도록 하는데 성의를 보여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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