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 100대 드라마 ⑧기술진보] 78. 나노테크 개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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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노 기술을 이용, 개발한 초소형 로봇이 혈관속을 이동하는 것을 그린 상상도.

2003년 9월. 서울 시내를 운전 중이던 서울대 김기범(재료공학부) 교수의 휴대전화 벨이 울렸다. 핸즈프리로 받아 보니 다급한 목소리가 터졌다. 나노 (nano:10억분의 1m)분야 신기술 개발을 위해 일본에 보낸 대학원생의 전화였다.

“교수님, 나노 소자(양자점)들이 우리가 원하던 대로 쫙 배열됐어요. 망망대해처럼 끝 간 데 없이 늘어섰어요.”

김 교수는 차를 길가에 세웠다.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려 심호흡을 했다. 나노 소자를 마음대로 늘어서게 할 수 있다니. 그건 바로 지금의 반도체 메모리보다 수천 배 용량이 큰 나노 메모리를 대량 생산할 길이 보인다는 뜻이었다. 혹시 이렇게 하면 나노 소자를 지금의 반도체 소자 찍어내듯 양산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이 맞아떨어진 것이었다. 세상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아이디어였다. 꿈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김 교수의 아이디어는 199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는 전 세계적으로 나노 과학이 태동하던 무렵이었다. 크기가 머리카락 굵기의 1만분의 1 수준인 나노 물질로 전자 회로를 만들면 지금의 반도체로는 상상도 못하던 새로운 세계가 열리겠기에 모두가 나노를 외치던 때였다. 그러나 나노 연구는 시작하자마자 한계에 부닥쳤다. 당시의 기술로는 아주 간단한 나노 회로를 만드는 데도 몇 시간이 걸렸다.

그런 가운데 김 교수는 생각했다. ‘나노 크기를 볼 수 있는 특수한 전자현미경이 있다. 볼 수 있다면 나노 크기 회로를 찍어낼 수도 있지 않을까’ 그건 발상의 전환이었다. 김 교수의 생각은 인쇄기가 한 페이지의 그림을 척척 찍어내듯 나노 회로를 찍어내겠다는 것이었다. 어렵게 정부 지원을 받아 학생들을 일본 전자현미경업체인 제올에 보내 전자현미경 기술을 배우고, 개조를 함께 하게 했다. 그 첫 열매가 2003년 9월 맺어진 것이었다.

현미경을 국내로 들여와 나노 소자를 마음대로 배열할 수 있다는 게 확실해질 때까지 연구를 계속했다. 지금 김 교수는 세계 최고 학술지에 결과를 싣기 위해 논문을 쓰고 있다. 지난해 말 일본에서 열린 국제학술회의에서 결과를 발표하자 일부 선진국 기업이 연구를 같이하자고 접촉도 했다고 한다. 세계에서 가장 앞선 나노 기술을 한국 과학자가 개발했다는 사실이 전 세계에 인정되고 있는 것이다.

이 분야에서 김 교수를 비롯한 한국 과학자들은 잇따른 개가를 올렸다. 한양대 이해원(화학) 교수는 나노 회로를 조각해 나가는 속도를 종전보다 100배 높여 그 결과를 2003년 발표했다. 최근에는 그 속도를 다시 다섯 배 높이는 데 성공했다. 또 삼성종합기술원 박완준 박사팀은 섭씨 1000도 내외에서나 가능했던 탄소나노튜브 제조를 상온에서 할 수 있도록 했다. 이 결과는 지난해 말 발표됐다.

권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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