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의 「고신분 고의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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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세상에 널리 알려진 미국의 현대소설가 「어니스트·헤밍웨이」가 어느날 친구로부터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받았다. 『여보게, 부자란 자네와 나같은 사람과는 다른 사람이겠지?』 이 말에 「헤밍웨이」는 『물론이지. 그들은 지독하게 돈이 많은 사람들이지』라고 대꾸했다.
「헤밍웨이」의 이와 같은 대답에는 「돈」만이 그들과 우리들 사이를 구분할 수 있는 유일한 차이라는 그 특유의 풍자가 함축되어 있다. 그런데 돈이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교육·권력·명망등을 포함해서 기타 많은 특혜를 누릴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해 준다. 따라서 실제로 돈이 있고 없는 차이란 엄청난 것이다.
사실 부는 그것을 소유하는 사람이 더 많은 물질적 이익을 얻을 수 있고 권력을 살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며, 아울러 그가 보다 좋은 교육을 받는 것을 가능케 한다. 그래서 부자들은 고급주택, 고급식당, 고급승용차, 고급의류와 장신구, 고가의 골동품등 「고급」에 물린 생활을 한다.
그뿐만 아니라 「○○연합회」니 「○○협회」와 같은 압력단체를 조직하여 국가의 정책결정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클럽」과 같은 사교모임을 만들어 명사들의 잔치를 연다.
물론 부자들이 이와같은 생활방식을 가졌다고 해서 그들을 비난해서도 안되고 또 비난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자본주의적 경제체제와 자유민주주의적 정치체제하에서 살고있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가 그네들에게 바라고 싶은 것은 이른바 「고신분 고의무」(noblesse oblige)라는 말과 같이 높은 신분에 걸맞는 고귀한 의무감을 가져 달라는 것이다. 즉 크게는 문어발식 기업병합으로 중소영세기업의 설땅을 빼앗아가는데서부터 시작해서 보이지 않는 「큰손」으로 금융사기극을 벌여 서민들의 피땀 맺힌 저금을 날려보내고, 작게는 부동산투기로 내집마련을 일생 일대의 간절한 소망으로 생각하고 있는 소시민의 꿈을 산산조각내는 추한 부자가 되지 말아달라는 것이다.
만약 그들이 이와같은 행동철학을 불식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도덕의 진공속에서 살아간다면, 그들의 「고급」생활은 선망의 대상이 아닌 밥맛없는 냉소의 대상이 될 뿐이다. 마치「발자크」가 그의『인간희극』에서 왕정복고시대의 프랑스의 「신흥부자」들을 메스꺼움과 혐오감의 대상으로 묘사했던 것처럼.
돌이켜보면 우리사회가 대망의 산업사회에로의 발돋움을 시작한지 어언 20년의 세월이 흘러갔다.
그러므로 한국의 부자들도 이제는 시민사회의 윤리를 터득할 때가 된 것이다.
이와같은 의미에서 새해에는 누구보다도 먼저 부자들이 「고신분 고의무」의 사명감 속에서 우리사회를 보다 건전한 사회로 이끌어 가는데 솔선해주기 바란다.
심윤종 <성균관대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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