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교장선생님은 '간식 요리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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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산중 학생들이 김성삼 교장(앞치마 두른 사람)이 만든 김밥을 나눠먹고 있다.

5일 오후 5시 충남 보령시 미산면 미산중학교 행정실. 이 학교 김성삼(57) 교장이 당근.시금치.햄 등 각종 재료를 갖다 놓고 능숙한 솜씨로 김밥을 말고 있다. 30여 분 뒤 테이블 위에는 김밥 40여 줄이 수북히 쌓였다. 교사 한 명이 학교 방송으로 "간식 먹을 시간이다. 오늘 메뉴는 김밥이다"라고 방송한다. 방송이 끝나기 무섭게 전교생 42명이 행정실로 몰려와 김밥을 맛있게 먹는다.

매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이 학교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이다.

김 교장은 날마다 방과후 자율학습하는 학생들에게 간식을 직접 만들어 준다. 메뉴도 김밥.샌드위치.자장밥.떡볶이 등 네댓 가지나 된다.

김 교장은 재료 선택부터 조리까지 자신이 직접 맡고 있다. 재료는 학교에서 30여km나 떨어진 보령시내에 나가 직접 구입한다.

그가 간식 도우미로 나선 것은 지난해 9월 부임 직후부터다. 학교가 산골에 있어 주변에 학원이 단 한 곳도 없는 데다 학부모 대부분이 농사를 지어 방과후 자녀를 돌보기 힘들다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했다. 학부모들을 만나 학교에서 오후 9시까지 자율학습을 시키겠다고 알렸고 학부모들도 흔쾌히 동의했다.

문제는 간식이었다. 급식시설이 없는 학교에서 간식을 마련해 줄 직원이나 예산이 없었다. 하지만 조리 걱정은 없었다. 자신이 학창 시절부터 어머니에게서 배우고 익힌 요리실력을 활용하면 된다고 여긴 것이다. 그는 스스로 터득한 한식.양식.중식 등 40여 가지 요리법이 적힌 매뉴얼도 갖고 있다.

김 교장은 학교 근처 보령댐을 관리하는 수자원공사 보령댐 관리단을 찾아 댐 주변 지역 지원사업비 일부를 급식비로 지원해달라고 요청했다. 관리단은 이 요청을 받아들여 간식용 급식비를 학기 당 700여 만원씩 지원해주고 있다.

3학년 이지은양은 최근 학교 인터넷 사이트에 "샌드위치에 12가지 재료를 사용하고 김밥을 손수 만들어 주시는 교장선생님의 간식 맛과 고마움은 절대 잊지 못할 것"이라는 감사의 글을 올렸다.

김 교장은 "학생들이 학교와 교장에 대해 친근감을 갖게 됐고, 교사들은 교육에만 신경쓸 수 있어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보령=김방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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