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출제한 의도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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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83학년도 대입학력고사 결과는 수험생들의 점수가 너무 높아 화제가 되고있다.
3백 점 이상의 고득점자만해도 자그마치 6천3백여 명. 지난해의 무려 8배에 이르렀으니 가히 충격적인 성적인플레가 아닐 수 없다.
고사자체만으로 볼 때 고득점자가 많다해서 나무랄 수는 없다.
고득점상위권과 중 상위권이 늘어나고 중하위권이 그만큼 줄어 상·하 점수 권이 고른 분포를 보였으니 예년에 비해 정상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고득점 상위권 가운데서도 이번처럼 동점자가 쏟아져 입시의 기본요건인 선발 기능을 잃을 지경이라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대입학력고사는 말할 것도 없이 수험생이 고교 교육을 정상적으로 이수했는가, 또 대학에 들어가 수학할 능력이 얼마만큼 있는가를 측정하는 판별기능을 갖고 있다. 그런데도 출제를 무턱대고 쉽게 해 특히 상위권에서 능력의 우열을 제대로 평가할 수 없게 만들어놓았으니 학력고사의 존재이유가 의심스러워졌다. 이러한 출제의 배경에는 과외공부를 없애고 고교교육을 정상화시켜보려는 정책적 의도가 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과외공부를 막기 위해 의도적으로 출제수준을 낮추어 고득점 분산정책을 펴나갈 때 고교교육에 미칠 영향이 어마하리라는 것을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적당히 공부해도 쉽게 높은 점수를 얻을 수 있도록 운영되는 제도는 학생들에게 공부를 열심히 하지 말도록 권유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교육의 목표는 개인의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토록 해 지·덕·체를 고루 갖춘 인간을 육성하는데 있다. 설교교육의 정상화도 바로 이러한 전인교육의 실현을 뜻한다. 그런데도 현행제도는 겉으로는 교육의 정상화를 내걸면서 결과적으로는 공부 많이 하는 것을 막는 듯한 입장을 짙게 하고 있다. 고교교육의 내실을 다지고 학력수준을 향상시켜 고득점자가 배출되도록 유도하는 것이 아니고, 출제를 수준이하로 해 성적이 좋게나오도록 합으로써 고교교육이 정상화된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은 아닌지.
지식편중의 교육을 탈피한다면서 신체적·도덕적 영역의 능력개발노력은 도외시하고 지의 규제에만 급급 하는 감도 없지 않다. 마치 지만 억제하면 덕과 체는 저절로 개발되는 것으로 믿는 것 같다.
선진외국과 경쟁하는데 있어서 우리는 모두가 모자라지만 그 중에서도 지식이 가장 모자란다. 지·덕· 체는 각기 상충되는 것이 아니고 서로 상승작용을 하는 것이다.
지가 없는 덕은 무능이 그 지덕이 없는 체는 완력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어느 하나라도 억제하는 것이 만능이 아니고 다같이 개발과 신장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다. 부작용이 있다고 해서 쉽게 규제를 하려드는데서 교육이 본래의 기능을 잃는다. 교육정책이 사회문제해결이라는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바람에 교육본래의 기능이 뒷전으로 밀려나서는 안 된다.
소풍 길에 사고가 난다고 소풍금지 조치를 내리고, 유리창 닦다가 추락사고가 있었다해서 유리창 닦기를 못하게 하고, 우유급식을 하다 식중독사고가 났다해서 급식을 중단시키는 발상-. 이것이 공부 많이 할려는 데서 문제가 발생한다고 『쉬운 문제 낼 테니 공부하지 말라』 는 것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일이다. <김창태 부국장 겸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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