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C(한국투자공사), '해외투자 큰손' 채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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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투자공사(KIC)가 200억 달러를 들고 해외시장 투자를 준비 중이다. 운용 모델은 싱가포르투자청(GIC)과 노르웨이의 페트롤리엄(석유) 펀드. 한국보다 10~25년 앞서 각각 외환보유액과 오일머니를 굴려 국제 금융계의 큰손으로 성장한 두 기관을 벤치마킹해 최고의 투자기관으로 발돋움하겠다는 게 목표다.

7월 1일 출범한 투자공사는 현재 전문인력을 뽑고, 운영 시스템을 구축하느라 한창이다. 유사시 대외 결제 자금으로 써야할 외환보유액으로 해외에 투자하는 만큼 안정된 운영 시스템 구축이 급선무이기 때문이다.

◆ 준비 중 '이상 무'=20조원에 이르는 거액의 외환을 운용하려면 전산 시스템과 조직 정비가 가장 중요하다. 이를 위해 KIC는 자산운용 시스템을 구축 중인데, 완벽하게 갖추려면 최소 1년의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이강원 KIC 초대 사장은 "시스템을 완벽하게 갖추기 전까지는 직접운용 대신 아웃소싱(외부위탁)이 주류가 될 것"이라며 "펀드를 운용할 최고운용책임자(CIO)는 해외 금융기관의 최상급 실력자를 영입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르면 10월께 확정될 해외파 CIO의 보수는 이 분야 최정상급 수준에 달할 전망이다. 지난달 31일에는 대통령이 임명하는 6명의 민간 운영위원회도 확정, 외환 운용의 안전장치를 하나 더 보탰다.

◆ 연말께 투자 개시=인사와 조직이 정비되면 연말께 한국은행에서 외환보유액을 순차적으로 넘겨받아 해외투자에 나서게 된다. KIC는 중장기적 비전을 가지고 설립된 만큼 단기적인 수익률에는 연연하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이 사장은 "외부에 운용을 맡길 때는 채권에서 시작한 뒤 주식으로 확대하고, 최종적으론 부동산 시장에 진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독자적인 운용 체제를 확립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KIC가 위탁받은 200억 달러는 언제라도 현금화가 가능한 외환보유액의 성격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저위험.고수익 투자를 해야 되지만 현실적으로 그런 투자는 많지 않기 때문이다. 시장 관계자들이 KIC의 자산운용이 지금까지 한은의 운용 틀에서 크게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을 내놓는 것도 이 때문이다.

◆ 싱가포르 등 벤치마킹=KIC가 GIC와 페트롤리엄 펀드를 조직과 자산 운용의 모델로 삼기로 한 것은 두 펀드 모두 KIC처럼 국가적 재산을 적극적으로 운용하기 위해 설립됐기 때문이다. 이 사장은 특히 오랜 시행착오를 거친 GIC를 벤치마킹하면 시행착오를 줄이고 압축성장도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GIC는 1981년 70억 달러 정도로 시작해 최근 자산이 1400억 달러로 불어났을 만큼 국제 투자시장의 큰손이 됐다. 페트롤리엄 펀드도 미래 세대를 위해 석유 판매 수익으로 조성된 1300억 달러 규모의 자산을 운용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페트롤리엄 펀드는 89년부터 시작한 증권투자를 통해 지난해 8.9%의 높은 수익률을 거뒀으며, GIC는 부동산 투자로 황금알을 낳고 있다. KIC의 투자가 장래 어느 쪽으로 움직여갈 것인지를 시사해주는 대목이다.

김동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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