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버스안내양 | 고향 스쳐지나가며 손님들의 안전귀성 기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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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피서철이나 신·구정은 우리 안내양에겐 그 어느 때보다 분주하다. 평소보다 몇갑절 많은 손님들, 더구나 고향에 간다는 심정으로 한껏 들뜬손님들을 안전하게 모셔야한다는 책임감이 더욱 무겁기도 하다. 남들이 떡국으로 신정을 즐기는 때일수록 끼니까지 거르면서, 더우기 내 고향인 원주를 지나칠 때면 고향생각애 문득 문득 처량한 생각도 하지만 안내양 생활 5년째를 맞이하는 올해는 그저 안전운행만을 기원했다.
신정의 손님들은 자칫 과식으로 차내에서 화장실을 찾거나 자주 휴게소에 정차해 줄 것을요구하기도 한다. 특히 군인들의 신정휴가길은 옆에서 보기만 해도 즐겁게 느껴진다. 82년을보내는 12월31일 마지막 속초행은 손님에게도, 나에게도 감명깊은 날이 되었다.
속초 도착을 알리는 방송을 막 마칠 즈음 40대가량의 아저씨 한분이 마이크롤 빌려 달라면서『한해의 마지막 날까지 고향에도 못가고 우리를 안전하게 태워다 준 기사분과 안내양을 위해 성의를 표시하자』며 차내에 방송을 하시고 모자를 돌리자 40여명의 손님들은 갖가지 음식과 예쁜액세서리등을 선뜻선뜻 내놓아 모자를 가득 채웠다. 결코 외롭지않은, 복받은신정연휴의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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