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년 정들인 철마와 82년 마지막날 고별|춘천 역장-김용환씨 정년 퇴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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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철마의 긴 울음이 한해의 마감을 고한다. 떠나 보내는 아쉬움, 다시 만나는 기쁨이 교차되는 역 폴랫폼-. 숱한 삶의 사연들이 흐르는 이 플랫폼에 서서 45년8개월을 보낸 노 역장. 그도 이제 임오년 마지막 귀향 열차를 떠나 보내며 그 자신 철마와 함께 엮어온 인생의 한장을 마감하고 있다.
한국 철도의 산증인 김용환씨 (61·강원도 춘천 역장). 궤도 위를 달리는 열차처럼 곁눈질 않고 살아온 45년8개월의 철도 인생에서 82년이 마지막 가는 31일 정년 퇴임을 하는 것이다.
지난 한평생 손에 잡았던 신호기를 마지막으로 흔드는 노 역장은 『떠나는 신호가 이처럼 허전한 줄은 미처 몰랐다』며 감회에 젖었다.
김 역장이 철도와 인연을 맺은 것은 16세 되던 37년4월. 당시 조선 철도 주식회사 (일본인 소유)에서 사철로 운영하던 수인선 수원역 역수 (역무원)가 첫 직장이었다.
철도국에 근무하다 6·25를 만난 김 역장은 한강철교가 폭파되기 직전 철도를 따라 남하, 수송 본부 요원으로 일했고 9·28수복엔 선발대로 서울에 입성했다.
『일제 때 꽥꽥 기적음을 내던 「모갈」 기관차에서 칙칙 폭폭의 「파시」, 그보다 힘이 좋은 「미카」형, 요즘의 「디젤」 기관차·전동차까지 기관차의 전세대를 함께 살아온 셈이지요』
지난해 5월 춘천 역장으로 부임할 때까지 그는 교통부·철도청·일선 역장으로 20여 곳을 옮기며 「80년 철도사의 산증인」이란 평을 들었다. 그가 데리고 있던 부하들이 그보다 높이 승진해 국장·차장·청장까지 거쳐 나가기도 했지만 그는 묵묵히 제자리를 지켜 일했다. 현재 직급이 4급. 일제 시대 월급 32원은 이젠 42만여원이 됐다.
김 역장은 근무지가 바뀔 때마다 철길을 따라 역무원 합숙소나 하숙방을 전전해야 했지만 부인 이종천씨 (59)가 양재 학원을 경영하며 자신에게 큰 부담을 주지 않고 2남 4녀를 건강하고 바르게 길러내 고마울 뿐이라고 했다.
『철마란 정해 놓은 궤도를 달릴뿐입니다. 모든 사고는 사람이 잘못 다루기 때문이에요』
사람의 방심과 태만이 철도 사고의 원인이라고 믿고 있는 그는 지금까지 「모든 일은 작은데서부터, 성실하게, 철저하게 하자」는 것을 신조로 삼아왔다.
『최선을 다한 철도 인생, 후회는 없어요』 김 역장은 곧바로 한없이 뻗은 철길, 아스라이 반짝이는 3색 신호등과 철로 등을 가리킨다.
『이제 이 철길을 떠나 살자니 톱날 사이에 내 몸이 끼이는 것만 같군요』 정시 출발, 정시 도착, 정시 주행-. 철마에서 배운 시간 의식을 어떻게 극복할지가 두렵다고 김 역장은 걱정이다. <한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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