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건 파문은 불통 이미지 탓 … "청와대 관저가 듣는 곳 돼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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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2013년 2월 25일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취임식을 마친 뒤 차량에 올라 손을 흔들고 있다. 박 대통령은 당시 취임사에서 “깨끗하고, 투명하고, 유능한 정부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뉴시스]▷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대선 승리 2주년을 하루 앞둔 18일 청와대는 잔칫집이 아니었다. ‘정윤회 문건’ 파문의 여파 때문이다.

 새누리당에선 전날 심재철 최고위원에 이어 이날 국회 법사위 여당 간사인 홍일표 의원이 평화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정홍원 총리를 비롯해 개각을 포함한 인사 쇄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청와대 내부 분위기를 묻는 질문에 “쇄신 요구에 귀를 닫고 있는 것은 아니다”고만 했다.

 오후 4시 춘추관(기자실)에선 송년회가 열릴 예정이었지만 취소됐다. 오래전에 이날로 정할 땐 대선 승리일이란 점을 감안했다고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올 수 있다는 기대도 있었다. 하지만 문건 파문으로 백지화됐다. 그나마 참석하겠다던 김기춘 비서실장과 수석들마저 불참하면서다.

 박 대통령은 신년 초 기자회견에서 “통일은 대박”이란 메시지를 던지며 산뜻하게 출발했다. 하지만 국정 운영이 탄력을 받을 만했던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엄습하면서 집권 2년차의 절반을 수습에 골몰해야 했다. 가까스로 11월 들면서 세월호특별법에 여야가 합의, 경제 살리기에 나설 발판을 마련했다. 그러나 예기치 않은 ‘정윤회 문건’ 파문이 청와대를 다시 수렁으로 밀어 넣었다. 박 대통령은 이날도 ‘해외 진출 성과 확산 토론회’에 참석하는 등 경제 살리기 행보를 이어가고 있지만 지지율 하락이 발목을 잡고 있다. ‘정윤회 문건’에 들어 있던 국정 개입 의혹이 검찰 수사 결과 대부분 사실무근으로 드러났지만 ‘뭔가가 있는 것 같다’는 여론이 더 많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대통령의 ‘불통(不通) 이미지’가 이런 여론을 형성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밀봉 인사, 서면 보고, 장관이나 수석들보다 비서관 3인이 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소문 등이 불통 이미지를 키웠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이제부터라도 관저와 집무실을 소통의 장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조언이 잇따르고 있다.

 현재 박 대통령이 근무하는 본관과 관저는 참모들의 접근성이 떨어진다. 비서동인 위민관에서 10분은 걸어야 한다. 열다섯 걸음이면 비서들과 만나는 독일 총리의 집무실, 문만 열고 나가면 참모들 방이 있는 미국 백악관에 비해 소통에 취약하다.

 그나마 역대 대통령들은 집무실의 약점을 보완하려고 관저나 안가(安家)를 소통공간으로 활용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현안이 있을 때 늦은 밤에도 관저로 참모들을 불렀다. 2008년 5월 촛불시위로 위기를 맞자 당시 한승수 총리 등을 관저로 불러 인적 쇄신을 논의했고, 2011년 1월 정동기 전 감사원장 후보자가 낙마한 뒤에는 안상수 대표 등 당 지도부를 안가로 불러 막걸리 회동을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2006년 4월 사학법 재개정 문제로 여야가 대립하자 당시 열린우리당 김한길·한나라당 이재오 원내대표를 관저로 초대해 타협을 유도해 냈다. 반면 여성 대통령이란 특수성 등 때문에 박 대통령의 관저는 상대적으로 폐쇄적이다. 관저에 가 보지 못했다는 수석들도 복수다. 동국대 박명호(정치학) 교수는 “대통령이 불통 이미지를 벗기 위해선 다양한 목소리를 격식 없이 듣는 게 중요하다”며 “집무실이나 관저가 허심탄회한 만남의 장소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신용호·허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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