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뜬 연말" 기습한 화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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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대구=이용우 기자】연말 기분에 들뜬 관광 호텔의 새벽을 기습한 불은 삽시간에 10명의 목숨을 앗아갔고 객실 70개와 각종 부대 시설물을 태워 연건평 1천5백44평의 6층 호텔 건물을 폐허로 만들었다. 밤늦도록 놀다가 새벽녘에야 잠이든 열부 투숙객들은 곤한 잠에 빠진 채 불에 타 숨졌으며 일부는 불이 번지며 호텔 내부의 카피트와 커튼, 각종 장식품에서 번져 나온 유독가스에 질식돼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숨졌다. 금호 호텔은 지난 일 대구시가 실시한 소방 시설 안전 검사에서 시절 개수 명령을 받았다.
피해가 많은 것은 호텔 내부의 각종 장식품이 인화성이 강한데다 발화 초기에 종업원들이 자체 소방 기구로 불을 끄려 신고를 늦추었기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발화>
불을 처음은 이 호텔 영선 과장 장만금씨 (32)는 1층 코피숍에서 코피를 마시고 있던 중 화재 비상벨이 울려 웨이터 조봉환씨 (30)와 함께 2층으로 뛰어올라가 보니 221호 앞 복도에서 불길이 치솟았다고 말했다.
불길은 곧 복도 카피트와. 커튼을 태운 뒤 계단을 타고 3층으로 번졌으며 20분만에 다시 4, 5층 계단을 타고 건물 전체로 번졌다.

<대피 및 구조>헬기 접근 어려워
불에 타 숨진 사람들은 대부분 5층 투숙객들이었다. 불이 나자 2, 3층 투숙객들은 계단을 통해 무사히 1층으로 내려왔으며 3층 일부와 4층 이상에 투숙했던 20여명의 투숙객들은 모두 옥상으로 대피했으나 경찰과 공군의 헬기가 짙은 연기 때문에 구조를 못하자 비상 계단을 통해 1층까지 내려왔다.
또 501호에 투숙했던 이상기씨 (51·산업 은행 직원)등 5∼6명의 투숙객들은 객실 창문에 매달려 있다가 긴급 출동한 소방대의 고가 사다리를 타고 내려오기도 했다. 503호와 507호실에 각각 투숙했던 장달수씨 (43·인도네시아 교민 회장)와 장씨의 부인 김경순씨 (42) 아들 문식 군 (7) 형식 군 (3) 등 4명은 불이 나자 502호실로 물렸다가 대피하지 못하고 참변을 당했다.

<보험>
이 호텔은 지난 3월 4억7천만원의 보험에 가입했으며 8월17일에도 2층 이발소에서 누전으로 불이나 8평 내부를 모두 태운 사고가 있었다.

<확인 수사>투숙객수 확인 안돼
경찰은 이번 불이 누전 또는 담뱃불 실화에 의해 일어난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지난 8월l7일에도 누전으로 2층에 있는 이발소에서 불이 난 사실을 들며 그 당시 전기 배선의 이상 여부를 철저히 점검했는지를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한편 호텔 프론트 데스크에 기록된 투숙객은 3층 12명, 5층 10명, 6층 13명 등 35명이며 기록이 안된 투숙객이 15명쯤 될 것으로 추정돼 투숙 객수는 50명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금호 호텔>객실 70개 갖춘 1급 원로 정객 즐겨 찾아
금호 호텔은 자유당 정권 때 대구 지방의 이름난 요정 금호장 (한옥 대지 8백50평, 건평2백평)을 개조해 60년대 초 (63년4월22일 등록 객실 25개) 문을 연 관광 호텔.
75년 증축, 지하 2층 지상 6층 (대지 6백16평, 연건평 1천8백평) 객실 초개를 갖춘 1급 관광 호텔로 대구 시내 중심가에 있는데다가 자유당 정권 때 영남 지방 요정 정치의 메카로 이름나 70년대 정부 요인이나 정객들이 많이 투숙, 호텔 규모에 비해 많이 알려진 관광 호텔이다.
고 박정희 대통령도 대구에 들를 때면 이 호텔을 즐겨 이용했었다.
특히 74년12월27일 유신헌법 개헌 추진위 경북 도지부 현판식을 위해 금호 호텔에 투숙한 김영삼 신민당 총재 일행이 유신헌법을 지지하는 상이군경들을 모독한 발언을 했다해서 대구 지방 상이군경 3백여명이 호텔 앞에서 농성하는 바람에 김 총재가 10시간 동안 연금 되기도 했다. 이때 호텔 측은 밀린 숙박비와 파손된 기물의 피해액 수백만원을 받지 않기로 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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