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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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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1957년 10월 4일 당시 소련은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러시아어로 '길동무'라는 뜻) 1호를 우주로 쏘아 올려 미국을 충격에 빠뜨렸다. 이어 한 달도 채 못 돼 소련은 스푸트니크 2호를 발사해 미국을 또 놀라게 했다. 이번에는 인공위성 자체보다 최초의 '우주 여행객'이 탑승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탑승객은 라이카(Laika)라는 개였다.

라이카는 지구의 궤도를 선회하며 우주 공간에서 변화하는 맥박.호흡.체온 등 각종 생체 징후를 지구에 보낸 뒤 1주일 만에 우주에서 영원히 잠들었다. 라이카는 동물체의 우주 여행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또 라이카는 소련과 미국의 '우주 전쟁'의 막을 올리게 하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라이카가 죽은 이듬해 창설됐다. 61년 4월 최초의 우주비행사 유리 가가린이 탄생한 것도 라이카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개는 인간의 가장 오랜 동반자로서 인류의 과학 발전에 기여했다. 러시아의 생리학자 파블로프가 1900년 정립한 조건반사이론은 개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나왔다. 인간의 많은 행동이 조건 형성 과정을 통해 학습된 일종의 조건반사임을 증명한 이 이론은 오늘날 교육학 등에 활용되고 있다. 프랑스의 과학자 루이 파스퇴르가 1888년 개를 통해 백신을 개발하면서 인류는 광견병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얼마 전 황우석 교수팀이 복제에 성공한 것도 개였다.

또 개는 헌신과 충직의 상징이다.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에는 오디세우스의 늙은 개 아르고스가 등장한다.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전쟁에 출정한 지 20년이 지나 거지로 변장해 고향에 돌아왔을 때 주인 오디세우스를 알아본 것은 아르고스밖에 없었다.

1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반려(伴侶)동물 국제회의'가 국내에 처음으로 개막돼 인간과 동물의 관계 등이 논의됐다. 반려동물이란 용어는 1983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국제 심포지엄을 통해 애완동물은 장난감이 아니라 사람과 더불어 사는 존재임을 강조해 부르기 시작했다. 동물이 인류에 공헌한 점을 인정한다면 동물보호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확산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고대훈 사건사회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