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심도 동일인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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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김변호사는 이때를 회고해 기같이 썼다.
『나는 그날 김갑수대법관도 찾아갔다. <나는 두가지 목적으로 자네를 찾았네. 첫째는 조봉암씨를 구하고 둘째는 자네의 입장도 구하기 위해서일세. 자네가 원심을 담당한 이 사건을 재심마저 맡을수있겠는가. 손을 떼어주기 바라네.> 이런 제의에 대해 김대법관은<그렇게 하세. 조대법원장과 상의하겠으며 필요하다면 나를 기피해 주게>라고 했었다.
나는 허락대법관도 만났다. <재판은 잘못된 것이니 새로 심판해야하지 않겠읍니까. 역사의 심판을 모르시오>라고 했더니 허대법관도 당혹감을 열굴에 나타내면서 <영감, 너무 걱정말고 몸조심 하시오>라고 했었다』 라는 내용.
그러나 김변호사의 이런 주장에 대해 김대법관은 그런 일은 없었다고 했다. 『내가 기피신청을 하라고 했다면 왜 그들은 기피신청을 내지 않았겠는가』라는 것이 김대법관의 해명이었다.
정치적인 구명운동도 펼쳐쳤다. 조직부장이던 이명하씨의 증언.
「진보당 간부 몇사람이 이기붕국회의장, 비서실장이던 한갑수씨를 만났다. 우리는 이의장이 죽산이 사형을 면하도록 노력하겠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약속해주면 진보당은 다음 정부통령선거에서 이승만-이기붕러닝메이트의 당선을 위해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제안했다. 한실장은 이뜻을 이의장뿐 아니라 자유당 간부들에게도 전하겠다고 했다.
이에 대해 한갑수씨는 『간부들과 만난것이 아니고 진보당간부 한분이 나를 찾아와 죽산구명을 호소했다. 내가 이의장에게 이분의 말을 전했더니 <나혼자 힘으로 되는건가> 라는 이의장의 반응이었다.』
나라밖에서도 여러 움직임이 있었다.
해외여론도 조봉암을 정치범으로 규정해 구명운동을 벌였다. UPI통신은 5월17일 보도에서 일본에있는 조봉암구명위원회가 펴고있는 조봉암구출탄원서 서명운동에는 8천명이 호응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일본의 구명운동은 도리어 역작용으로 나타났다.
대검찰청은 『일본지역의 조봉암구명위원회는 조가 농림장관일 때 비서였으며 그 이후 간첩과의 접선혐의로 대법원에 재판이 계류돼 있으면서 병보석으로 석방되자 도피한 이영근과 역시 같은 사건에 관련돼 기소됐다가 병보석중 도피한 김봉진동이 주동이 되어있다』고 발표했다. 대검은 『조봉암이 구속된 이래 북괴는 조총련에 구명운동을 지시했으며 간첩들에게 구명을 위한 자료를 수집토록 지령한 것이 검거간첩들에 의해 명확히 되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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