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완의 광고로 보는 세상] 베끼면 망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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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대선 주자들의 이미지 분석에 관한 기사들이 여기저기서 보이기 시작한다. 각 진영에서는 국민이 진정 원하는 지도자 이미지가 무엇인지 파악해 자기들 후보를 거기에 맞출 것이다. 우유부단하게 보이는 후보는 결단력 있게, 낡은 이미지의 후보는 젊고 생기 있게, 귀족적으로 보이는 후보는 서민적이고 격의 없는 이미지로 만드는 식이다. 소비자들이 매운 라면과 순한 소주를 좋아하니까 모든 라면과 소주가 얼큰하고 부드러워진 것처럼 말이다.

여행용 트렁크 제조회사 아메리칸 투어리스터(American Tourister)사의 유명한 1969년 광고는 모든 소비자가 여행용 트렁크에 대해 바라는 것을 광고하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튼튼함'이다. 무서운 고릴라 (실제 촬영에는 침팬지를 썼지만)가 갇혀 있는 철책 우리 안으로 한 사람이 재빨리 아메리칸 투어리스터 트렁크 하나를 던져 넣고 문을 채운다.

고릴라는 으르렁거리며 그 트렁크를 무자비하게 집어던지고, 발로 차고, 올라타고, 쾅쾅 구른다. "서투른 벨 보이들, 난폭한 택시 기사들, 부주의한 도어맨들, 무자비한 수하물 담당자들…. 당신을 위해 아메리칸 투어리스터 트렁크가 있습니다. 20달러부터." 이 광고는 전 세계적으로 상도 여러 번 탔고 물가 상승에 따라 마지막 "20달러부터" 자막만 수정되며 무려 15년이나 방영됐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많은 사람이 이 광고를 샘소나이트(Samsonite) 광고로 오해하는 게 아닌가. 지금도 광고를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이 광고를 보여 주면 샘소나이트 광고로 생각한다. 그렇다! '튼튼함'은 이미 샘소나이트의 자산으로서, 아메리칸 투어리스터의 것이 될 수 없었던 것이다. 1910년 설립(샘소나이트로 사명을 바꾼 것은 1941년) 이래 '튼튼한 여행용 트렁크'는 샘소나이트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성경에 나오는 힘세고 건장한 거인 삼손에서 비롯된 샘소나이트라는 말 자체도 '튼튼함'을 더욱 강화시켜 주고 있다. 결국 1993년 아메리칸 투어리스터는 샘소나이트에게 합병됐다.

두 회사가 소비자의 마음속에 같은 단어를 심을 수 없다는 이런 사실을 마케팅에서는 '독점의 법칙 (Law of Exclusivity)'이라고 한다. 쉽게 말해 성공하려면 내 것을 가지고 나의 길을 가야 한다는 의미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어 나는 사람이 덜 다닌 길을 택했다. 그리고 그것이 내 인생 여정을 이렇게 바꾸었다"라는 프로스트(Robert Frost)의 시를 대선 주자들에게, 그리고 라면과 소주 회사 마케팅 담당자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그레이프커뮤니케이션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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