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 소송법 규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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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대법원이 피고인, 피의자를 위한 인권 보호 규정과 형사 소송 절차 일반에 관한 해석 지침을 담은 형사 소송 규칙을 새로 제정한 것은 인신 구속을 신중히 하고 인권을 옹호한다는 측면에서 중요한 진전이다.
내년 3월부터 시행될 이 규칙은 구속 영장 청구가 있을 때에는 피의자 측에 유리한 자료를 법원에 제출 할 수 있도록 하며, 피고인이나 증인에 대한 강요, 위압, 유도 심문 등을 금지하고 있다. 이 규정은 또 보석의 허가 여부 결정은 검사가 의견을 제출한 날로부터 7일 이내에 하고 구형 공판이 있은 14일 이내에 판결 공판을 하도록 규정했다.
사법부는 금년 들어 고숙종 여인, 정재파군, 김시훈씨 사건 등을 다루면서 엄격한 증거 주의를 존중, 인권 의식에 새바람을 불러일으키게 했다. 이 같은 판결은 형사 피의자, 피고인들의 인권은 보다 높은 차원에서 옹호되어야 하며 우리 나라의 형사 소송 절차가 근본적으로 개선되어야 한다는 반성을 제기했다.
형사 소송법이 제정된지 28년만에 처음으로 형사 소송 절차 일반에 대한 대법원 규칙이 만들어진 것은 그런 관점에서 큰 뜻을 찾을 수 있다.
그 동안 관행에 따라 진행되어온 행사 재판으로 재판 실무상 불편은 말할 것도 없고 피의자, 피고인의 인권이 무시되는 경우가 한 둘이 아니었다.
특히 구속 영장을 발부할 때 담당 판사는 수사 기관이 제시한 범죄 사실이나 피의자 진술조서 등에 의문이 있어도 이를 확인 할 수가 없어 억울한 인신 구속의 소지가 많았다.
대법원의 새 규칙은 따라서 피의자 측에서도 합의서, 진단서나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피해자의 탄원서 등을 제출 할 수 있어 담당 판사는 이를 참고로 할 수 있게 했다.
보석이나 구속 취소 청구에 대한 재판부의 결정 기한을 7일 이내로 하고 판결 선고 역시 결심 공판으로부터 원칙적으로 14일 이내로 규정한 것은 재판부의 결정을 무작정 기다려야 하는 피의자들의 불편을 시정하기 위한 조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규칙에 법관이 영장을 발부할 때 피의자를 직접 불러 진술을 듣도록 하는「영장 실질 심사제」가 포함되지 않았고 보석 결정을 청구 일로부터 7일 이내로 한 규정 등이 강제성을 띤 것이 아니라 준수를 요망하는 「훈시 규정」에 지나지 않는 점등이 아쉬움을 남겼다.
대법원의 「형사 소송법 규칙」은 한마디로 우리 나라의 형사 소송 절차가 앞으로는 피의자, 피고인의 사고에 중점을 두어 운용된다는 것을 뜻한다.
비록 새로 제정된 이 규정 자체만 갖고 인권을 보장하는 장치라고 보는 것은 성급한 판단이겠지만, 적어도 그것을 지향하는 방향이라고 믿어도 될 것 같다.
법이나 제도가 아무리 좋아도 그것이 제구실을 하려면 당무자들이 당초의 취지를 살려 운용 해야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특히 형사범을 다루는 소송 절차에서는 법관들의 사소한 판단 착오나 무관심 등이 피의자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주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번 「규칙」의 제정을 반기면서도 한편으로 여기에 담긴 뜻이 충실하게 이행되기를 당부하는 까닭도 그런데 있는 것이다.
새 「규칙」이 피고인의 권익을 위해 새장을 연 것은 틀림없지만 그것은 하나의 도정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새 규칙의 충실한 이행과 함께 인권 옹호를 위한 사법부의 부단한 관심을 촉구해 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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