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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적인 경영자가 되려면 어떤 학과 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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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장세진
KAIST 경영대학원 교수

대입 수능을 치른 수험생과 부모들은 아마도 지금 어느 대학, 무슨 학과에 지원할까 고민일 것이다. 요즘처럼 취업난이 심할수록 학과 선택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 의사·법관·교수 같은 전문직으로 진로를 정하지 않는 한 대부분의 졸업생은 취업할 것이다. 그러면 과연 대학의 학과 선택이 향후 경영자로 성장하는 데 얼마나 영향을 줄까.

 흔히 이공계 출신 경영자들은 분석력, 문제 해결 능력이 뛰어나다고 한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사티아 나델라,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 GM의 메리 배라 모두 엔지니어 출신 CEO이고 GE의 제프리 이멀트는 수학 전공자다. 반면 인문학은 사람의 동기와 행동을 이해할 수 있게 하고 불확실한 상황에 대응하는 능력과 의사소통 능력을 높인다는 장점이 있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철학을,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의 세노트는 역사를 전공했다.

 2014년 국내 100대 기업 CEO들의 출신 학과는 경제학과 경영학을 합친 상경계가 38%, 공대가 28%, 그 밖의 인문·사회·자연과학 전공자가 34%로 구분된다. 포춘지가 조사한 미국 100대 기업의 비율도 각각 26%, 20%, 54%로 인문·사회·자연과학 전공자의 비중이 약간 높지만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런 통계에 따르면 마치 상경계나 공대가 경영자가 되기 위한 지름길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는 단지 상경계와 공대의 졸업생 수가 많기 때문에 일어나는 착시현상이다. 어느 실증연구에서도 특정 전공이 CEO로 성장하는 데 더 도움이 된다는 근거는 찾을 수 없다.

 오히려 학부 전공보다 대학에서 어떤 활동을 하는가가 더 중요하게 나타난다.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피안 슈 교수는 2006~2012년 MIT 졸업생 6521명의 입학 성적, 학생 활동, 수강과목, 성적, 취업 등의 관계를 세밀하게 조사했다. MIT는 이공계가 강한 학교지만 경제학과 경영학으로도 유명하다. 입학 시 전공을 미리 정하는 한국 대학과 달리 MIT 학생들은 처음 2년은 교양과목과 기초과목들을 듣고 3학년부터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의 전공과목을 수강한다. 수리에 강한 MIT 학생들은 금융업에서 특히 인기가 있는데 슈 교수의 조사에 따르면 졸업 후 금융업으로 진출하는 학생들은 이공계 대학원으로 진학하는 학생에 비해 과목 선택부터 다르다고 한다.

 금융업에 취업하는 학생은 입학성적은 가장 뛰어난 반면 학부 평점은 낮은 편이며 과목도 최소한으로 수강한다. 그 대신 스포츠와 클럽활동에 시간을 더 쏟으며 인턴경험을 통해 대인관계 능력을 쌓으려고 노력한다. 반면 향후 이공계 인재로 크려는 학생들은 과목도 더 많이 수강하고 평점도 더 높다. 이와 같이 MIT 학생들은 자신의 관심 분야에 따라 서로 달리 시간을 배분해 자신에게 필요한 기술을 연마하는 것이다. 결국 졸업할 때가 되면 이공계와 금융권에 취업하는 학생들은 서로 판이한 재능을 갖게 된다. 따라서 이공계 졸업자가 금융권에 취직한다고 해서 유능한 이공계 인재를 빼앗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들은 이공계에 흥미를 못 느끼는 학생들이라는 점이다.

 2008년에 닥친 금융위기는 이러한 가설을 검증하는 자연적인 실험이 되었다. 많은 금융기관이 도산하고 신입사원 채용이 중단되는 와중에도 MIT 학생들의 취업 선택은 달라지지 않았다. 금융위기로 가장 큰 타격을 받은 학생들은 경영이나 경제를 전공하던 2009년 졸업생이었는데 금융업 취업 기회가 줄었다고 해서 이공계 쪽의 직장을 구하는 학생들은 없었다.

또한 금융위기 이후에도 상경계를 전공하려는 학생들의 비율이 낮아지지도 않았다. 이런 실증연구의 결과는 상경계와 이공계를 전공하는 학생들은 근본적으로 관심 분야가 다른 집단이지 서로 경쟁관계에 있지 않다는 점을 시사한다.

 이 결과를 토대로 유추해 보면 유능한 경영자는 어느 학부 전공에서도 나올 수 있다. 다만 이들 학생은 선택한 학문 분야가 자신과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전공학과와 별개로 경영에 필요한 자질을 연마하려고 노력한다. 공대생이나 인문학도라도 필요한 상경계 과목을 듣고 동아리 모임으로 리더십과 대인관계 관리 능력을 쌓고 인턴십을 통해 장차 경영자가 되기 위한 준비를 할 수 있다.

 따라서 수능을 치르고 전공학과를 정하려 하는 수험생들이 지금 전공학과를 정하는 데 노심초사하는 건 바람직스럽지 않다. 이보다 과연 어느 대학이 향후 학생 자신의 관심 분야를 발견해감에 따라 전공을 바꾸거나 부전공 등을 정해 자신의 역량을 개발할 수 있는 유연성을 제공하는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추가적으로 졸업 후 경영대학원에 진학하는 방법도 있다. 결론적으로 졸업장에 찍혀 있는 전공은 경영자로 성공하는 것과 무관하다. 다만 열심히 자신의 관심 분야를 찾아 필요한 훈련을 스스로 하는 것이 경영자로 성공하는 비결이다.

장세진 KAIST 경영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