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명에게 새 삶 선물 ‘인체조직 기증’ 의사부터 관심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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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의 말 한마디가 100명에게 새로운 삶을 선물할 수 있을까? 의료진이 ‘인체 조직 기증’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가진다면 가능한 얘기다. 필자는 1976년 세계 최초로 절단된 허벅지를 재접합했다. 인체 조직 기증에 대한 관심도 이때부터 생겨났다. 대퇴부(허벅지) 재접합술에 성공한 이후 인공관절 수술에 전념했는데, 뼈이식이 필요한 환자를 많이 만나며 인체 조직 기증의 필요성에 대해 고민했다. 인체 조직 이식술은 기증자의 사후에 조직을 채취하고, 채취한 조직을 가공해 진행한다. 한 명이 조직을 기증하면 100명이 넘는 환자에게 혜택이 돌아간다. 피부·뼈를 이식받는 환자의 대부분은 열악한 노동·성장환경에 처한 저소득층이거나 희귀 암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이다. 따라서 인체 조직 기증은 사회적 약자를 위한 국가의 보건안전망이기도 하다.

인체 조직 기증자의 뜻을 기리고, 인체 조직을 공정히 분배하기 위해 ‘한국인체조직기증원’이 설립됐다. 이 기증원은 공공 구득기관 시스템을 도입해 조직은행 전문 인력을 양성해 오고 있다. 공적 배분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 결과 기증자의 인체 조직을 이식받고 정상적으로 살아가는 환자가 많아졌다. 그러나 국내 인체 조직 기증 현실은 개선할 과제가 산더미다.

현재 뼈·피부·연골·인대 등 이식에 필요한 인체 조직 대부분(약 80%)을 수입한다. 그런데 수입한 이식재는 그 나라에서 필요한 조직을 우선 공급하고 남은 조직들이다. 이식재 품질이 낮을 수 있다. 안전성도 떨어질 수 있다. 가격은 10배 넘게 비싸기도 하다. 환자의 부담이 크다.

인체 조직 기증에 대한 의료진의 관심이 필요하다. 수많은 환자를 살리는 것은 단 한 명의 기증자다. 기증자는 인체 조직 기증에 대한 의료진의 관심에서 나온다. 의료진이 유가족에게 인체 조직을 기증할 의향이 있는지 묻는 것만으로도 국내 인체 조직 기증 건수를 높일 수 있다. 인체 조직 기증 문화가 잘 정착된 영국은 혈액·장기·인체 조직 통합기관(NHSBT)을 설립하고, 의과대학 교육과정에 인체 조직 기증에 대한 커리큘럼을 넣는 등 의료진이 주도적으로 인체 조직 기증 활성화를 위해 노력한다. 지난해 12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인체조직 안전 및 관리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내년 1월 29일 시행된다. 시장경제 체제가 아닌 국가가 관리하는 공적 관리 체계에서 인체 조직을 관리할 수 있게 됐다.

인체 조직을 받지 못해 고통받고 불구가 된 환자가 많다. 평균수명이 늘고 교통사고, 산업재해가 늘어나면서 조직 이식을 필요로 하는 사례가 많아졌다. 의료진의 동참, 법제도의 개선, 온 국민의 참여가 하나 돼야 할 때다.

유명철 한국인체조직기증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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