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대한항공의 뒷북 사과가 진정성 가지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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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12일 얼굴을 드러냈다. ‘땅콩 리턴’ 사건이 터진 지 6일 만이다. 자진해서 나온 것도 아니었다. 이날 오후 국토교통부 항공·철도조사위원회에 출두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포토라인에 섰다. 조 전 부사장은 “승무원과 사무장에게 진심으로 직접 사과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국토교통부 출두에 앞서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도 사과했다. 조 회장은 사과가 늦어진 것에 대해 “제가 자식 교육을 잘못 시킨 것 같다. 죄송하다”고 말했다. 회장까지 나섰지만 대한항공 오너 일가를 바라보는 여론은 여전히 싸늘하다. 사과 시점이 너무 늦었기 때문이다. 조 회장의 사과에 대해 “조 부사장이 미성년자인가. 마흔 살 넘은 성년인데 왜 아버지가 먼저 사과하느냐”는 반응이 많다.

 사실 이 사건이 커진 것은 대한항공의 탓이 크다. 첫날 조 전 부사장이 직접 사과하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더라면 국민 정서가 이 정도로 악화되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대한항공은 첫 해명부터 ‘땅콩 리턴’의 책임을 사무장과 승무원에게 돌렸다. 또 조 전 부사장은 책임지고 물러나겠다고 하면서 보직만 사퇴하고 부사장 신분은 유지했다. 국민들 눈에는 여론이 잠잠해지면 다시 경영에 복귀하려는 ‘꼼수’로 비쳐졌다.

 뒤늦은 사과도 진정성을 의심받고 있다. 국토부 조사에 검찰의 압수수색까지 들어가자 어쩔 수 없이 하는 모양새다. 당초 조 전 부사장은 12일 오전 10시에 출석하라는 국토부의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정신적으로 힘든 상태라는 이유를 들어 조사를 미루려 했다. 그러다 국토부와 검찰의 압박이 거세지자 입장을 바꾼 것이다. 결국 조 전 부사장은 모든 직에서 물러나고 사법처리까지 될 위기에 몰렸다.

  우리 사회는 이 사건을 단순한 항공법 위반이 아니라 오너 일가의 제왕적 횡포로 보고 있다. 대한항공의 사과가 사회적 공감을 얻으려면 사건 재발을 막기 위한 시스템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땅콩을 서비스하는 매뉴얼이 아니라 오너 일가가 직원들을 대하는 매뉴얼부터 만들겠다는 각오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