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한국 경제, 닫힌 지갑을 어떻게 열 것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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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한국 경제가 내년에도 저성장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 10일 한국개발연구원(KDI)은 내년 경제성장률을 3.5%로 예상했다. 더 암울한 건 이 수치가 그나마 ‘보수적’이란 것이다. 경제가 예측대로 잘 작동할 경우에 그렇다는 것이고 대내외에 다른 변수가 생기면 더 떨어질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는 기획재정부(4.0%)는 물론 한은(3.9%) 전망보다 0.4~0.5%포인트나 낮은 것이다. 전망이 최대한 긍정적으로 이뤄진다 해도 2010년 이후 5년째 잠재성장률(4.0%)을 밑돌게 됐다. 다른 나라에 비하면 괜찮은 편이라지만 성장이 계속 잠재성장률을 밑도는 건 정책 효과가 떨어지고 경제 활력이 부족하다는 의미니 문제다.

 그렇다고 돈을 풀고 금리를 내리는 재정·통화 정책도 화끈하게 쓰기 어렵다. 어제 한국은행은 금리를 동결했다. 가계부채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가계대출은 10월에 이어 지난달에도 7조원 가까이 늘어 월간 증가폭이 두 달 연속 사상 최대였다. 금융 당국은 담보인정비율(LTV)·총부채상환비율(DTI)을 추가 완화하려던 계획을 백지화했다. 되레 가계부채 억제 대책으로 다시 전환하자는 목소리도 높다. 기재부는 아직 좀 더 지켜보자는 입장이지만 자신감은 많이 떨어져 있다. 항생제 내성이 생기듯 금리 인하 찔끔, 통화 확대 찔끔 정도로는 가라앉는 경제가 벌떡 일어날 만큼 약발이 안 듣고 있다는 의미다. 그 바람에 부처 간 엇박자까지 걱정해야 하는 판국이다.

 어렵고 약발이 잘 안 듣는다고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다. KDI는 당분간 확장적인 재정정책 기조를 유지하고 공기업 부채, 공적연금 등 공공부문 개혁과 세원 확대, 규제 완화 등의 정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돈을 풀되 가계부채를 더 늘리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것만으론 부족하다. 무엇보다 내년 경제의 성패는 쪼그라든 민간 소비를 어떻게 살려내느냐에 따라 갈릴 것이다. 돈이 장롱 안에만 머물고 부자들마저 지갑을 닫은 지 오래다. 민간의 닫힌 지갑을 열 획기적인 소비 활성화 대책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