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바논 건설 참여 외국업체엔 별 따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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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미국·프랑스·이탈리아 3국의 군대가 베이루트에 진출한 뒤 지난 두 달 남짓 사이 레바논을 여행한 외국인은 예외 없이 곤혹을 치르게 마련이다. 7년간의 내란으로 해마다 17∼20%의 인플레를 기록, 물가가 비싸고 정치정세가 불안한 가운데서도 유독 레바논의 파운드화만이 외국통화에 대해 강세를 보여 여행객의 호주머니 사정을 불안하게 하기 때문이다. 다른 주요 외환시장에서는 미 달러화가 계속 오름세를 보이는 동안 레바논에서는 요즘도 하룻밤 자고 나면 값이 떨어져 지난 두 달 동안 무려 20%나 폭락했다. 두 달 전만 해도 1달러에 5파운드를 넘던 것이 요즘은 4파운드 선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다.
내란 이전에도 산업이라곤 고작 직물공업과 귀금속 세 공업이 주종을 이루었고 그나마 지금도 전쟁으로 75%나 파괴돼 이렇다 할 산업시설도 없을뿐더러 이미 해외로 빠져나간 굵직한 자본들도 아직 돌아올 채비도 하지 않은 상황에서 이런 현상을 빚는 것을 두고 현지의 경제전문가들도 뚜렷한 설명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다만 몇 가지 그럴 듯한 추측을 하고 있다. 첫째 7년 내전을 겪으면서도 금 보유고가 40억 달에다 외화보유고가 20억 달러로 레바논의 경제기반이 단단한 점을 들고 있다. 외환보유고가 이렇게 높은 것은 일부 부유층들은 재산을 해외로 도피시키고 있지만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가 그들의 보유 외환을 빼돌리지 않고 레바논에 거의 그대로 두고 있고 전쟁 후 해외의 송금이 늘고 있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따라서 레바논이 안정돼 다시 중동의 금융 중심지로서의 영화를 되찾을 것이라는 기대심리가 달러화의 강세를 막는다는 설명이다.
이밖에 레바논 국민들의 개인부가 축적 돼 있어 경제안정의 기축이 되고 있는 점도 지적되고 있다.
또 교통과 무역의 중심지로서, 중간의 금융 중심지였던 레바논이 옛날부터 돈 장사가 발달해 스위스 은행 못지 않은 금융기술로 돈을 긁어모으고 있다는 것이다.
경제구조 자체를 보더라도 산업인구의 3분의2이상이 상업에 종사해 왔다. 손보다 머리를 써서 돈을 버는 상술이 축적된 경제구조라는 얘기다.
레바논의 경제건설 계획을 말할 때 앞으로 투입될 공공부문의 전후복구자금 1백50억 달러가 우선 거론되곤 한다. 25% 이상이 파괴된 주택을 다시 짓고 도로·통신시설·항만시설 등을 복구하는데 5년 동안 이만한 돈이 투입돼야 할 것으로 레바논 정부는 추계하고 있다.
이중 절반인 75억 달러를 사우디아라비아 등 아랍국가로부터 얻어 쓰고 미국이 35억 달러, 나머지는 레바논 정부가 투자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이러한 계획은 아직 구상단계일 뿐 정확한 조사를 뒷받침으로 해 구체화된 것이 아니다.
75억 달러는 아랍국가들이 제공한다고 가정하더라도(이미 아랍국가들은 79년 20억 달러를 제공키로 결정) 미국이 35억 달러를 내놓는다는 것은 레바논 정부의 단순한 기대에 지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레바논 정부가 부담해야 할 40억 달러를 자체마련 한다는 것도 막연한 형편이다. 지금도 레바논 정부는 재정이 바닥나 매달 7백만 파운드의 공채를 발행해 은행들이 인수하고 있다.
설사 1백50억 달러의 자금이 마련되어 복구공사가 순조롭게 착수된다고 가정하더라도 외국업체에 얼마나 참여할 수 있는가 하는 것도 관심거리다.
전쟁으로 부족한 것이 많다 곤 하지만 레바논은 중동지역에선 건축과 토목기술이 가장 발달된 나라다. 플랜트 수출만 제외하곤 중장비나 건축기술에 모자라는 것이 없다. 현재 활동중인 대소 건설 관계 용역 회사만 해도 2백여 개가되고 이중엔 10억∼20억 달러의 단일공사를 할 수 있는 1급 회사만도 7개로 이미 사우디아라비아 등에서 한국업체와 경쟁하고 있을 정도다.
레바논 정부의 위촉으로 공공부문 건축계약을 대행하고 있는 베이루트 건축협의의「이삼·시노」사무총장에 따르면 지난 30년 동안 이 협회를 통해 외국업체가 공사를 맡을 수 있었던 것은 단 한번밖에 없었다. 레바논 건설업체가 기술을 갖지 못했던 항만공사의 일부를 외국 용역회사가 했던 것이다.
이처럼 외국업체의 진출이 어려운 것은 레바논 정부가 행정적으로 외국업체의 진출을 규제, 차별하고 있는데 원인이 있다. 이를테면 외국회사의 장비도입을 까다롭게 하여 결국 레바논 업체를 대행사로 내세우도록 해 하청 형태로 들어갈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 놓았다.
결국 주 계약은 레바논 회사가 해 노른자위는 그들이 차지하고 숙련된 외국 노동력만 이용하겠다는 정책이다. 레바논은 원래 이 부근에서 가장 풍부한 숙련 노동력을 갖고 있었지만 전쟁 중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아랍지역으로 많이 빠져나가(30만 명)한국업체의 입장에서는「흙탕물」을 일으키고 있는 사람들이다. 레바논 현지에서는 이들 대신 필리핀·파키스탄 등의 값싼 노동력을 들여오고 있다.
베이루트 KOTRA 소장 김응경씨의 말에 따르면 자신이 노동성의 고위 관리를 비롯 건설 관계자들과 만나 한국건설업체의 진출 가능성을 타진해 본 결과 외국업체는 반드시 현지의 대행회사를 통해 들어와야 하며 임원의 3분의1은 레바논 사람으로 채우도록 돼 있다고 했다.
투기와 용역사업이 고도로 발달한 레바논 사람들을 상대로 한 외국 건설업체의 진출은 따라서 상당한 경험과 연구·검토를 바탕으로 신중히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베이루트의 경제관계 소식통은 권고하고 있다. 【베이루트=김동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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