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죄의 확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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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의심 가는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나 유죄인정의확증이 없는 한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판단하여야한다는 형사재판의 취지에 따라 무죄를 선고한다』-.
여대생 박상은양 피살사건의 항소심 재판부가 밝힌 무죄선고 이유다.
우리는 재판을 통해 살인사건의 「무죄인」 이 「유죄인」으로, 「유죄인」 이때론 「무죄인」으로 바뀌는 흑백의 반전을 수없이 보아왔다.
『드라마틱하다』 는 것은 역시 역전이 일어날 때 느끼는 강점이다. 이번 사건은 1,2심의판결이 똑같이 유지되어 이와 같은 드라마틱한 느낌은 없었지만 이를 지켜본 국민들로 하여금 형사사건에 관해 조용히 음미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3심제를 채택하고있는 우리나라인 만큼 아직 상급심의 최종판단을 남겨놓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항소심이 설시한『의심 갈 땐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라는 형사재판의 정신은 물증 없는 강력사건의 범인추정이 앞으로는 더더욱 재판정에 발붙일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강조했다고 보인다.
더우기 물증 없는 사건에서 검찰이 최후의 보루로 삼던 『검사 앞에서의 임의성 있는 자백』 마저도 설 땅을 잃은 셈이다.
검찰이 받은 쇼크도 적지 않은 것 같다. 이 사건은 원점에서 검찰이 수사를 시작했고 『모든 증거수집에 있어서 합법적이고 합당한 절차를 취한 교과서적 수사였다』고 자부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증거가 부족하다고 유죄인정을 못한 것은 그만큼 완벽한 증거를 법원이 요구한다』는 의미다.
증거재판에서 직접증거와 자백의 임의성을 엄격하게 요구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오판의 가능성을 줄이고 인권을 옹호한다는 2개의 측면이 강조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10명의 죄 지운 자를 놓치더라도 l명의 무고한사람을 희생시켜서는 안되지만 놓치는 10명의 범인도 문제라는 반론도 있다.
검찰이 직접 수사해서 기소한 사건에 무죄가 선고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강력사건의 수사방법을 혁신할 때가 온 것이다. 최근 검찰이 강력사건담당검사의 교육을 강화하고 초동수사부터 전담검사가 지휘토록 하는 등 수사체계를 정비하고있는 것은 주목할 일이다.
물증이 없기 때문에 진짜 범인이 풀려나 활개치는 일은 없어야 할 일이다.<고정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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