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 찾는 손님과 입씨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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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저, 주인을 만나러 왔는데요.』
『네, 무슨 일인데요.』
『아니 예요. 주인을 꼭 만나 봐야 하는데요.』
오늘 아침 외래 객에게 내가 주인이라 거니, 주인을 만나 봐야 하겠다 거니 옥신각신 끝에 네가 주인임을 그제야 깨닫고 미안해하며 찾아왔던 용건조차 제대로 못보고 돌아갔다.
허름한 통바지 차림인 나를 보고 이 집의 주인이리라 쉽게 짐작해 내는 사람이 드물다. 우리 같은 사람보고 자수성가했다고 하던가. 자수성가라고 하기는 뭣하지만 아무든 3평 짜리 전 셋방에서 시작해 이렇듯 내 집을 마련한 것은 발전임에는 틀림없다. 우리는 20여 년 전부터 먹을 것 다 먹고 놀 것 다 놀고는 저축할 수 없음을 알고 한푼을 벌면 반푼은 저축했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 더니 세월이 흐름에 따라 별로 신통치 않은 수입도 날이 갈수록 목돈이 되어 갔다. 그 이도 돈을 아끼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손수 했고 나도 여자일, 남자일 가리지 않고 했다. 도배장판은 물론 집 내외 부 페인트칠 등 모두 우리 손으로 했다. 모레와 시멘트를 3대1의 비율로 섞어 하수구 부근을 발라 가면 이웃 분들은 혀를 차며 돌아간다.
몇 년 전 일이다. 내가 담장 창살에 페인트칠을 하고 있는데, 어떤 부인이 그 밑을 지나다7 올려다보고는『여자 분은 일당을 얼마나 받아요』하고 묻는 것이다. 나는 어떻게 대답할지 몰라 웃기만 했더니 장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 하며 지나갔다.
어찌 그뿐이랴. 작년 가을에는 향나무 전지를 하고 잇는데, 이 동네로 이사 온지 얼마 안 되는 부인이 우리 집 전지가 끝나면 자기네 전지를 부탁하는 것이었다. 얼마 후에야 내가 주인임을 알고 나를 나무라는 것이었다. 남자도 아닌 여자가 그런 차림으로 그런 일을 하고 있으니 몰라보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었다.
이렇듯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주인을 찾는 외래 객과 입씨름을 하곤 한다. 하지만 어떠랴. 외모가 사람을 평가하는 것은 아니니까. 하루종일 집안 일욜 보려면 잘잘 끌리는 드레스 보다 폭 넓은 통바지 차림이 편한 것을….
김정희<서울 성북구 정릉3동 900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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