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속보다〃견제〃「예산 깎기」공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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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기국회의 예산심의가 막바지에 이르렀다. 예결위5개 분과위의 깎고 늘리는 계수심의는 이미 19일로 끝났고 내주부터는 11인 소위의 종합계수조정작업이 시작된다. 어떻게든 깎자는 의원들과 한사코 안 깎이려는 정부측간에 공방전이 벌어지는 것은 예년과 같지만 올해도 국회의 삭감「실적」은 별로 크지 않으리란 전망.

<국고로 국고 사느냐>
○…제5분과위에서 김형내 의원(민한)은 항만청예산 중 해운업체에 무상장려금으로 계상된 6억5천만 원과 제주항건설비 35억 원에 대해 『적자재정에 재벌 급 회사를 도와줄 이유가 없고 또 제주항종합개발계획을 건설부가 마련중인데 중복 투자될 우려가 있다』며 2건을 각각 삭감·축소하라고 요구.
이에 항만청장은『해운업계를 지원한다는 상징적 의미가 있고, 또 제주항건설은 시급한 사업이므로 차라리 일반항구건설비를 깎아달라』고 자청해 일반항구건설비 1백12억 원 중 15%를 깎기로 합의했는데 나중에 여당의원들은 항만청장이 경솔했다고 힐책.
제2분과위에서 유인범 의윈(민한)은 산림청이 김종필 전 총리의 헌납재산인 서산농장을 4억5천만 원에 사들이기로 한데 대해『국고재산을 국고로 사들여 재정을 압박케 할 이유가 없으니 민간에 팔아 세입으로 잡아야한다』고 물고늘어져져 2시간동안 정회.
정희중 여당의원들도 야 측 지적이 타당하다는데 동의해 전액 삭감키로 합의.
제1분과위에선 정무 제2장관실의 사업비 1억2천만 원에 대해 야 측이『장관도 임명되지 않고 있는데 사업비가 웬말이냐』며 삭감을 주장.
이 문제는 예산안에 관한 정부·여당의 당정협의 때도 지적됐으나『연말이나 연초개각이 있을 경우 정무 제2장관이 임명될지도 모르니 그대로 두기로 한 것』(모 의원)이어서 정부·여당 측이 삭감을 반대했다가 결국은 삭감에 동의.
제3분과위에서 이영준 의원(민한)은『국채는 사채와 달라 일종의 세금성격이니 국채발행주선업체에 대한수수료 0·8%를 0·7%로 낮추는 게 좋겠다』고 지적, 정부도 흔쾌히 받아들여 5억5천만 원을 깎았다.
이 밖에도△총무처의 공무원국내대학원 위탁교육비 증액 분 1억1천만 원△철도청의 부산철도병원 적자보전 비 9억4천만 원△청소년 연맹지원비 증액 분 2억2천만 원 등이 여야 합의로 삭감됐다.
제4분과위에서 홍사덕 의원(민한)은 농수산부가 서울시의 농산물도매시장건설사업(총 규모1천9백억 원 규모의 계속사업)에 40%를 보조키로 한 것은 불합리하다고 지적, 내년도 보조 액 70억 원을 전액 삭감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
이에 대해 박종문 농수산장관은『서울시가 안 하려고 하는 사업을 억지로 떠맡긴 것이므로 지금 와서 후퇴할 수 없다』고 강경히 받아넘겨 미 합의로 결말.

<농약회사 살찌운다>
홍 의원은 또『농수산부가 농협의 농약재고유지를 위해 연간 7백20억 원상당의 농약구매에 따른 이차보전 금으로 19억 원을 농협에 보조키로 한 것은 안 그래도 막대한 흑자를 내는 농약의사들을 살찌우자는 얘기밖에 안 된다』고 삭감을 촉구.
제3분과위에서 이영준의원(민한)은 정부의 산업은행 2백억 원, 수출입은행 1백90억 원의 출자증액 분은 각각 1백억 원과 90억 원을 깎아 서민을 지원하는 신용보증기금에 대한 출자액을 높여야 한다고 제의.
그러나 재무부 측은 수출입 은행은 조선업계, 산은은 중화학업계를 각각 지원할 필요성이 크다고 주장, 원안통과를 강력히 요청.
제5분과위에서는 김형내 의원이 체신부의 우표류판매수입계상금 중 1백27억 원이 덜 계상 됐다고 추궁. 최순달 체신장관은『판매물량의 증가추세가 불투명해 적게 잡았다』며 이 문제를 검토할 시간을 하루만 달라고 요청.
이에 따라 김 의원측근과 관계공무원이 지난 8년 간의 우표류판매증가 추세에 맞춰 다시 검토해보니 1백9억 원이 덜 계상된 것으로 판명.

<백억 넘기는 어려워>
○…5일간의 예산안계수심의를 비공개 리에 마친 예결위의 여야의원들은 내년도 예산안이 너무 빡빡하게 짜여져 손댈 여지가 거의 없었다는 게 중론.
야당 측까지도『정부가 초 긴축예산안을 편성한 노력의 흔적이 역력하다』(김현규 민한당측간사)고 할 정도다.
민정당은 법인세율 등의 인상으로 국채발행규모를 최대한 줄인다는 원칙을 세우고 세출에서는 별로 손댈게 없다는 게 기본입장.
최낙철 민정당예결위간사는 정부가 적자편성을 할 정도로 워낙 빡빡하게 편성했기 때문에, 손댈 곳이 별로 없고 81년보다 20%가 증액된 82년도 예산안이 1백71억 원 삭감으로 끝난 만큼9·8%밖에 증액되지 않은 내년도예산안의 삭감규모는 1백억 원을 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렇게 삭감여지가 적어서인지 민한당은 올해 따라 예산삭감규모를 어림하는데 매우 조심스런 태도다.
지난해 예산심의 때 1조2천억 원 삭감규모를 내세웠다가 7천5백억→5천억→3천5백억→l천7백억→5백억 원 등으로 삭감목표를 낮춰 비판을 받았던 전례가 있어 이번에는 삭감목표를 발표조차 늦추는 실정.
지난주초 임종기 총무가 예결위분과위 간사·총무단·정책위의장단 연석회의에서 제시한 총무실의삭감 조정안은 일반회계에서 5천6백21억, 특별회계에서 2백92억 원을 깎아 모두5천9백14억 원을 삭감하자는 것.

<유인물 회수하기도>
이에 대해 예결위간사인 김현규 정책심의회의장이 지금 각 분과위별로 항목 하나하나를 놓고 심의중인데 이 숫자가 나가면 예결위원 들은 바지저고리가 될뿐더러 숫자가 너무 주먹구구식이라고 지적해 결국 유인물조차 회수하는 등 완전 백지화시켰다.
이 삭감조정안은△인건비 4백17억△판공비 98억△국내여비 21억△정책자문위원회 운영비 22억△예비비 1천억△일반행정 비 2천2백억 원 하는 식으로 뭉텅뭉텅 잘라내는 내용이어서 그대로 제시될 경우 비판이 많을 건 뻔한 이치.
민한당은 각 분과위의 심의결과와 재무위의 세법확정에 따른 세입규모 등을 그대로 내년도 삭감규모를 곧 제시한다는 방침이나 분과위의 심의결과를 토대로 할 경우 너무도 삭감규모가 작아 고민을 하고있다.
국민당도 삭감규모를 결정치 못하고 있기는 마찬가지.
이동진 총무는 경직성경비가 많지만 행정비·물건비·예비비등 절약할 부문이 전무한 것은 아니어서 삭감규모는 최대한 늘려보겠지만 현실적으론 어려옴이 적지 않다고 고충을 토로. <이수근· 김현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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