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설레는 장날 외출 최양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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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장날이란 어감에서 풍기는 것은 촌스럽다는 것이다. 촌스럽다는 것은 근대화와는 동떨어진, 무언가 싱그럽고 풋풋하다는 게 아닐까?
요즘은 웬만한 중소 도시까지 서구화된 유통구조로 슈퍼마킷이란게 일반화되어 있는 듯 싶다.
내가 살고 있는 지방도 현대화의 물결로 엄연히 슈퍼마킷이 존재하고 있으면서 구태의연한 장날이 지켜지고 있다.
원시적인 것·향토적인 것에의 향수 때문인지 나는 장날이면 가슴이 설레곤 한다. 닷새마다 어김없이 장이 서게 마련이지만 번번이 시집가기 전날 밤의 신부처럼 가슴이 울렁이는 것이다.
장날마다의 외출은 내게 불문율처럼 굳어진 행사다. 딱히 살 물건이 없더라도 지갑을 챙겨들고 장터로 향한다.
날듯 가볍기 만한 발걸음은 흡사 축제에 초대라도 받고 나선 듯 그렇게 흔쾌할 수가 없다.
쌀·콩·팥 등 잡곡자루와 밤·대추·은행 등 건과류 자루를 올망졸망 늘어놓은 시골 아주머니 앞에 쪼그리고 앉아 흥정도 해보고 싸구려를 외치는 옷장수 앞에서 이것저것 구경도 하며 나는 삶을 확인하곤 한다.
나흘간의 생활 속에 앙금처럼 가라앉은 피곤과 우울이 떠들썩한 장터의 분위기 속에서 시나브로 해소되어짐을 느낄 수 있다.
때로는 잡화 리어카 앞에서 흘러간 노래를 구성지게 불러대는 맹인 부부를 대할 때면 새삼 산다는 것에 숙연함을 느끼곤 한다.
구성진 유행가 가락에 맞춰 경쾌하게 스텝을 밟는 생강장수 아저씨 얼굴에 깔린 삶에의 환희를 발견하기도 하는데 그때마다 나는 가슴속에서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오름을 감지하곤 한다.
개구장이 아이들과 악다구니 쓰던 일, 대수롭잖은 일로 밤잠을 설치던 일들이 거짓말처럼 아무렇지 않게 여겨지며 나는 오직 생활에의 뿌듯한 의지로 충만한 채 돌아오곤 한다.
여느 날보다 헐값으로 산 생선이며 채소를 맛깔스럽게 식탁에 올릴 궁리에 마음이 바빠진채 나는 평범한 아낙네로서의 생활에 어떤 긍지마저 느끼곤 한다. <최양희(강원도 흥천읍 회망 6리 6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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