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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백한 오류도 못 걸러낸 공정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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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철 기자 중앙일보 기획취재국 부장
김회룡
김회룡 기자 중앙일보 차장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강병철
경제부문 기자

공정거래위원회는 5일 오후 전날(4일) 배포한 ‘자동차 부품 국내 및 해외 가격비교’ 보도자료에 오류가 발견됐다며 수정 자료를 보내 왔다. 국내외 수입차 부품 가격을 비교하면서 국내 수입차 부품가격엔 부가가치세(VAT)를 포함해서 계산하고 미국·독일 등 해외 수입차 부품가격에선 VAT를 빼고 계산해 일부 오류가 있었다는 설명이었다. 이 실수는 단순 오류가 아니어서 분석 결과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국내 수입차 부품가격에서 VAT를 빼고 비교했더니 전체 30개 부품 중 23개 부품이 아니라 17개만 국내 가격이 해외 평균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8할(77%)에 가까운 부품이 비싼 게 아니라 조사 대상 중 절반을 웃도는 정도(57%)만 국내가 비쌌다. 본지를 포함한 대부분의 언론도 잘못된 보도자료를 근거로 오보를 냈다. 올 8월 국토교통부가 ‘인터넷 자동차 부품가격 공개제도’를 시행한 이후 처음으로 범정부 차원에서 수입차 부품의 국내외 가격 차이를 조사해 소비자와 자동차 업계는 큰 관심을 보였다.

 이번 조사는 소비자단체인 소비자시민모임 이 맡았고, 보도자료도 만들었다. 그렇다고 공정위가 책임에서 자유로울 순 없다. 공정위는 2012년부터 소비자단체에 예산을 지원해 조사된 보도자료를 출입기자단에 배포하고, 소비자단체에 브리핑 기회까지 줬다. 공정위 관계자는 “소시모의 실무자가 보도자료를 최종 편집하는 과정에서 잘못된 수치가 들어갔고, 공정위도 철저히 검증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공정위가 잘못된 수치를 근거로 보도자료를 내 오보를 양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올 8월에도 ‘대기업집단 순환출자 현황’을 발표하면서 지난해 5월에 분석한 순환출자 고리에 오류가 있었다고 슬그머니 밝혔다. 삼성그룹의 지분율 1% 이상 순환출자 고리가 지난해 16개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30개였다. 롯데그룹도 지난해 51개로 조사됐지만 오류를 수정한 결과 5851개나 됐다. 순환출자 전산프로그램을 올 6월 구축해 지난해 수치를 뒤늦게 검증한 결과 1년여 만에 오류를 발견했다는 해명이었다.

 정부 기관의 보도자료 오류는 정부의 위신은 물론 자칫 정책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 단순히 소비자단체 실무자의 실수로 얼버무릴 것이 아니라 8일 취임하는 정재찬 위원장은 확실한 재발 방지책을 마련해야 한다. 최근 고가 논란을 빚고 있는 글로벌 가구업체 이케아에 대한 실태조사를 소비자단체가 맡고 있다. 다음주 또 다른 수입 제품의 국내외 가격차이 조사를 소비자단체가 발표한다는 보도계획이 잡혀 있다. 조사를 어디서 했건 간에 공정위는 책임의 화살을 피할 수 없다는 점을 신임 위원장도 꼭 유념하길 바란다.

강병철 경제부문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