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윤 칼럼] 빚 내지 마라! 패가망신한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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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4호 30면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달 18일 한 강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년에 금리가 오르면 한계가구 중 일부는 디폴트(지급 불능) 되겠지만 통화정책을 포기할 수는 없다.”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가 내년 중순께 기준금리를 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게 되면 한은도 불가피하게 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기준금리를 올리면 은행의 대출금리도 오른다. 빚을 진 사람의 부담은 그만큼 더 커진다. 채무자들의 고통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지만 그들 때문에 통화정책을 포기할 수는 없다는 게 이 총재의 말에 담긴 메시지다.

보통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린다고 하면 인플레이션 조짐이 나타난다고 판단할 때다. 한국은행법 1조에 나와 있는 한국은행의 목적은 ‘물가 안정’이다. 물가 뛰는 걸 막아 국민의 재산을 지키는 수호자가 돼야 하는 게 중앙은행의 숙명이다. 지금은 경기 과열을 걱정할 때가 아니다. 경기 침체라는 시커먼 먹구름이 하늘을 뒤덮고 있다. 디플레이션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는 이유다. 그런데도 이 총재가 기준금리를 올리겠다는 신호를 주는 건 자본유출 우려 때문이다. 한국과 미국의 금리 격차가 줄면 한국에 투자된 외국자본이 미국으로 돌아갈 게 뻔하다. 기축통화국이 아닌 한국에서 달러가 확 빠져나가면 재앙이다. 외환위기는 그렇게 오는 법이다. 통화정책을 포기할 수 없다는 이 총재의 연설은 이쯤 되면 이렇게 해석할 수 있다. ‘빚 내지 마라.’ 지금도 빚에 쪼들려 허덕대는 가계는 이자 부담이 더 커지면 파산할 수밖에 없다.

설령 한은이 금리를 올리지 않는다고 해도 안심할 수 없다. 경기 전망이 좋을 때는 차입을 통한 투자는 현명한 경제활동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디플레이션이 우려되는 현 상황은 지금 진 빚만으로도 시간이 갈수록 부담이 커지는 구조다. 지난 2분기와 3분기 연속으로 국내총생산(GDP) 디플레이터가 0%를 기록했다. GDP 디플레이터는 모든 재화와 서비스 물가를 포괄하는 종합적인 물가지수를 말한다. GDP 디플레이터가 두 분기 연속 0%로 나오니 디플레이션 걱정이 스멀스멀 몰려오는 게 당연하다. 진짜 디플레이션에 빠지면 채무자들은 가만히 앉아서 상환 부담을 더 짊어져야 한다. 물가가 오르건 내리건 관계없이 빚은 명목 금액으로 고정돼 있어서다. 물가는 떨어졌는데도 빚의 규모는 변화가 없으니 상환 부담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이렇듯 빚과 디플레이션이 결합하면 결과는 파국이다. 1930년대 미국 대공황 시대가 그랬다.

이런 상황에서도 최경환 경제팀은 ‘빚 권하는 사회’를 조장한다. 빚 내서 집 사라는 게 최경환 경제팀의 경기부양 방법이다. 건설업의 고용 효과가 크기 때문에 부동산 부양책에 매달리는 건 이해가 된다. 하지만 이미 한국 가계의 빚은 감당하기 힘든 수준까지 팽창했다. 3분기 말 기준 가계부채는 1060조3000억원으로 지난해 2분기부터 여섯 분기째 사상 최고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주택담보인정비율(LTV),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가 풀리면서 빚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더 우려스러운 건 ‘50대 폭탄론’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총 가계 부채에서 50대가 보유한 부채의 비중이 35.1%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2000년대 중반 부동산값 폭등기에 돈을 대거 빌려 집을 산 베이비부머(1955~63년생)들이 그 빚을 그대로 떠안고 있다는 얘기다. 은퇴가 얼마 남지 않은 50대가 빚을 여전히 많이 지고 있다는 건 심각한 징후다. 은퇴 이후에 이들의 소득은 줄어든다. 빚 갚을 능력이 떨어지면 그 부채는 악성이 될 수 있다. 빚은 패가망신을 부르는 치명적인 흉기가 될 수 있다. 지금, 빚 내면 안 된다.

김종윤 경제산업 에디터 yoon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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