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한 명만, 한 번 비행에 2억여원 '에볼라 맞춤형' 수송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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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에볼라 에어’로 불리는 항공기가 있다. 미국의 민간 항공사 피닉스 에어 그룹이 보유한 걸프스트림Ⅲ 수송기다. 세계에서 가장 안전하게 에볼라 감염 환자를 후송할 수 있는 ‘에어 앰뷸런스’로, 두 대밖에 없다. 한 번 비행에 20만 달러가 들고 환자 한 명밖에 못 태우지만, 미 국무부가 500만 달러 가까이 주고 계약을 맺었다. 다음달 시에라리온에 파견될 한국 의료진이 감염될 경우 최우선으로 선택할 후송 수단이 피닉스 에어의 에어 앰뷸런스다.

 에어 앰뷸런스가 지금까지 미국과 유럽 등으로 후송한 에볼라 감염 환자는 15명이다. 외신들은 후송이 필요한 에볼라 바이러스 감염 의료진의 대부분을 피닉스 에어가 맡았다고 보도하고 있다. 프랑스 등에도 환자 수송 전문 항공기를 보유한 항공사들이 있지만, 피닉스 에어만큼 확실한 ‘에볼라 맞춤형’ 안전 시스템을 갖추지는 못했다고 뉴욕타임스(NYT)는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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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어 앰뷸런스의 비장의 카드는 비행기에 싣고 내릴 수 있는 5.4㎥ 규모의 이동식 격리 병실이다. 환자가 비행기에 직접 올라타는 것이 아니라 격리 병실 안에 들어가 있고, 이 병실을 통째로 들어 옮기는 식이다. 피닉스 에어가 에어 앰뷸런스 기종으로 걸프스트림Ⅲ를 선택한 이유도 여기 있다. 걸프스트림Ⅲ에는 대형 화물용 도어가 설치돼 있기 때문에 이동식 격리 병실이 통과하기에 충분하다.

 격리 병실의 겉모습은 직사각형 텐트처럼 생겼다. 철제 프레임에 두꺼운 플라스틱 소재의 격리막을 씌웠다. 환자가 눕는 병상이 배치된 내실과 의료진이 드나들며 소독할 수 있는 방이 분리된 구조다. 큰 비닐 텐트 안에 비닐 문이 하나 있다고 보면 된다. 심박·맥박측정기를 비롯해 최신식 의료장비가 갖춰져 있다.

 격리 병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완벽한 밀폐성이다. 병실에는 6㎝ 두께의 고성능(HEPA) 필터를 끼운 팬이 부착돼 있다. 이를 통해 내부의 기압을 대기압보다 낮게 유지해 오염된 공기의 외부 유출을 막는다. 병실 출입구는 지퍼로 열고 닫는데, 이 지퍼 역시 특수 제작된 것이다. 증기조차 통과할 수 없는 재질로 완벽하게 방수 처리가 돼 있다.

 한번 환자를 수송하고 나면 에어 앰뷸런스는 최소 24시간 동안 오염물을 제거하는 과정을 거친다. 기본적으로 기내에 있던 모든 물품은 소독하거나 소각한다. 무전기까지 바로 폐기한다. 항공기 안팎은 과산화수소 증기와 암모니아로 소독한다. 이 과정이 모두 끝나면 최종 점검을 위해 포자(胞子·홀씨)가 묻어 있는 작은 조각을 기내에 넣는다. 바이러스가 있다면 포자가 증식하기 때문이다. 포자가 증식하면 앞의 과정을 다시 거친다.

 피닉스 에어의 에어 앰뷸런스는 에볼라 바이러스가 아닌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를 염두에 두고 개발된 것이다. 2003년 사스 창궐 때 의료진이 감염되는 사태가 속출하면서 미 정부의 고민이 시작됐다. 현지에서 치료하는 것보다는 본국으로 데려오는 것이 안전하지만 마땅한 후송 수단이 없었다.

 이에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2005년 피닉스 에어에 보건 인력을 안전하게 고향으로 후송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고 제의했다. 미 국방부 산하 질병연구소도 참여했다. 이들이 6년 만에 성과를 봤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이동식 격리 병실은 2011년 말에 탄생했다. 1500만 달러가 투입된 결과였다.

 하지만 에어 앰뷸런스는 이듬해 창고로 직행했다. 이미 사스 대응 필요성이 크지 않은 상황이었다. 막대한 비용을 들여서 에어 앰뷸런스를 만들어놓고 한 번 쓰지도 못했다는 비판도 받았다.

 에어 앰뷸런스는 2년 넘게 천덕꾸러기로 지냈다. 유지비용만 한 해에 수백만 달러가 들었다.

 그리고 지난 7월 말. 피닉스 에어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미 국무부였다. “그 격리 병실, 에볼라를 위해서도 쓸 수 있겠습니까?”

 랜들 데이비스 피닉스 에어 부사장은 최근 데일리비스트 인터뷰에서 당시를 떠올리며 “드디어 실전이었다. 쉽지 않은 임무인걸 알았지만 우린 준비돼 있다는 것도 알았다”고 말했다.

 피닉스 에어는 8월 2일 처음으로 에볼라 감염 환자를 미국으로 이송했다. 직후에 미 국무부와 계약을 맺었다. 미 국무부가 내년 1월까지 6개월 동안 피닉스 에어에 490만 달러를 지급하고, 각국의 영공 이용 허가를 받아주는 등의 조건이었다. 미 국무부는 피닉스 에어의 에어 앰뷸런스가 한 번 비행할 때 드는 비용을 평균 21만5000달러로 집계했다.

 사실상 유일한 후송 수단이지만, 논란도 없진 않다. 미 조지아주 애틀랜타에 있는 피닉스 에어 본사에서 서아프리카까지 간 뒤 유럽이나 미국으로 환자를 후송하는 데 최소 50~60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초기 대응 시기를 놓치면 환자의 상태가 악화할 수 있다. 한 번에 환자 한 명밖에 수송하지 못하고 가용할 수 있는 에어 앰뷸런스가 사실상 한 대뿐이란 점도 한계로 지적된다. 걸프스트림Ⅲ 수송기는 두 대뿐인데, 한 대는 상시 비상대기를 해야 한다. 이에 피닉스 에어는 걸프스트림Ⅲ 한 대를 더 개조 중이다.

 정부는 “한계는 있어도 우리 의료진이 혹시라도 감염됐을 때 찾을 수 있는 가장 유효한 수단은 결국 피닉스 에어의 에어 앰뷸런스를 이용하는 것”이란 입장이다. 최근 외교부는 피닉스 에어와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외교부 관계자는 “보증금 성격으로 일정 금액을 주고, 우리 인력이 에어 앰뷸런스를 이용하게 될 경우에 사후 정산하는 식이 될 것”이라며 “이용 가격은 후송 거리 등에 따라 달라진다”고 설명했다. 또 “만약 미국인 환자와 우리 환자가 동시에 발생하면 피닉스 에어의 우선순위는 미국인의 후송이 되기 때문에 유럽연합(EU)이 개발하고 있는 후송 수단도 활용하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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