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관리법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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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정부가 전격적으로 국회에 내놓은 「자원관리법안」은 우선 의외의 느낌이 든다.
이 법안이 소기 하는 여러 목적이나 입법취지가 설사 타당한 근거와 필요성을 갖고 있다해도 이를 받아들이는 국민의 감각으로는 긴장과 당혹을 느끼기에 충분할 만큼 법안의 내용이 포괄적이고 「관리」대상이 광범하다.
정부는 이 법안이 「필요시」에 국가의 인적·물적 자원, 기타 국가자원의 관리를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계획을 수립, 실시하기 위한 것이며 현행 자원관리규정을 대체하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 같은 필요에 따라 물적 자원으로는 각종 생산, 수리, 가공시설과 자동차, 선박, 항공기, 중기, 준설선, 하역장비를 비롯하여 방송, 영화, 신문, 인쇄, 의료시설과 기타 대통령령이 규정하는 시설, 업체를 포괄하고 있다. 이런 물적 자원의 관리를 위해 20세에서 50세까지의 모든 남자와 시행령에 따라 60세까지의 특수면허자, 자격취득자는 물론 예술인까지 동원대상에 포함하고 있다.
한마디로 국민의 일상생활과 재산에 거의 절대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내용을 이 법안은 담고있다.
정부는 이 법안이 유사시의 실제동원에 필요한 동원훈련에 주안을 두고있으며 외국의 입법 예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설명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법안이 간과하고 있는 몇 가지 중대한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이런 중대한 법안이 어떻게 행정부만의 전격적인 결정으로 성안되고 국회에까지 제출되었는지 얼른 납득하기 어렵다. 비록 그것이 동원을 위한 「훈련」에 주안이 있다해도 국민생활에 미칠 수 있는 광범한 파급을 고려할 때 무엇보다 먼저 국민 앞에 떳떳이 취지를 밝히고 여론을 수렴하는 합리적인 토론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 정도일 것이다.
과거 훌륭한 입법취지와 논리성에도 불구하고 졸속과 행정자의로 처리된 각종 법안이 크게 혼란을 야기해온 전철이 얼마나 많았던가를 깊이 유의할 필요가 있다.
둘째로 갖는 의문은 비상시에 대비하여 만들어 놓은 현재의 향토예비군법, 민방위기본법, 미발법, 군수조달에 관한 특별조치법 등 다양한 기존 입법만으로는 그와 유사한 목적을 이룰 수 없는지 궁금하다. 솔직이 말해 현재의 각종 동원, 훈련체제조차 국민의 생업에 지장을 줄 소지가 없지 않은데 다시 옥상옥의 부담을 더 지울 가능성은 없는지 충분한 검토가 따라야할 것이다.
세째 이 법안은 자원운용규정상의 「비상사태 하에서 국방상의 목적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라는 기본전제 대신 『장래에 있어서의 필요시』라는 지극히 포괄적이고 모호한 발동요건을 두고있어 엄밀한 법적 요건과 구체적인 목표설정을 요구하는 특별입법의 정신에 과연 합당한지, 또는 운영자의 자의에 따라 남용될 소지는 없는지, 역시 토론의 소지가 있다.
특히 법안의 핵심인 동원, 훈련대상이나 새로운 국민부담과 의무를 부과하는 내용이 지나치게 대통령령에 위임되고있어 법체계 상의 미비점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야당에서는 헌법 35조에서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국가의 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해 필요한 경우에 한해 법률로 제한할 수 있게 한 점을 들어 국민의 신체자유와 재산권보장을 제한하는 인적·물적 자원을 동원하려면 구체적인 요건을 제시해야하는데도 이 법안은 그것을 결여하고 있음을 지적, 헌법에도 위배된다고 주장하고있다.
국민의 기본자유와 권리에 대한 제한은 미국 대심원의 이례에서 보듯이. 『명백하고도 현존하는 위험』(clear and present danger)이 있을 때로 국한하려는 헌법해석이 세계적으로 보편화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우리는 이 중대한 사안이 국회심의에 앞서 보다 광범한 여론의 여과를 거치기를 주장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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