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기 잡다가 서민 잡는 일 없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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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정부와 열린우리당이 종합부동산 대책을 마련하면서 다소 신중한 자세로 돌아섰다. 부동산 관련 세금을 일괄적으로 적용하지 않고 지역별.대상별로 차별화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부동산 가격 안정을 위해 강력한 세금대책을 쓰지만 선의의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는 의도다.

23일 당정과 청와대의 고위관계자들이 일제히 밝힌 내용의 핵심은 '서민 보호'다. 부동산 투기 수요는 억제하겠지만 실수요자들에게 부담이 덜 가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당정이 부동산 대책 마련에 나설 때부터 '집 한 채 가진 실수요자들에게 선의의 피해가 가서는 안된다'는 지적이 많았다. 당정이 부동산 종합대책 발표(31일)를 일주일 남긴 시점에서 일제히 "선의의 피해를 줄이겠다"고 밝힌 것은 제대로 방향을 잡은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그러나 이런 세제의 차별화가 자칫 계층 간 갈등을 불러올 수도 있기 때문에 신중한 운영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 선의의 피해자 줄여=당정이 고강도의 부동산 대책을 준비할 때 집을 한 채 가진 실수요자들도 크게 불안해했다. 달랑 집 한 채 있는데 세 부담이 커지면 생활이 더욱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소득이 높은 계층에 비해 서민들이 느끼는 세 부담은 훨씬 크다. 일괄적으로 세금을 높이면 서민이 내는 세금의 절대액수는 고소득층에 비해 적어도 소득에 비례한 부담은 커질 수 있다.

그 때문에 당정은 집을 여러 채 가진 사람과 한 채 가진 사람, 비싼 집을 가진 사람과 싼 집을 가진 사람에게 적용하는 세제를 달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대표적인 게 주택분 재산세에 대한 증가율 상한제(50%)를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다. 현재 기준시가 9억원(내년부터는 6억원)을 넘는 주택에 대해서는 9억원 이하 분은 낮은 세율의 재산세를 매기고, 9억원 초과분은 높은 세율의 종합부동산세를 매긴다.

정부는 올해 한꺼번에 세금 부담이 늘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지난해와 비교해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의 세 부담이 50%를 넘지 않도록 상한제를 도입했다.

그러나 내년부터는 종합부동산세만 상한제를 폐지하고, 재산세에 대해서는 상한제를 그대로 두겠다는 얘기다. 또 은퇴한 노령 가구에 대해서는 세금에서 혜택을 주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정부 관계자는 "세부담 상한제 폐지, 보유세 실효세율 강화 등을 종합 검토하고 있지만 서민 등 실수요자들에게는 부담이 크지 않도록 세제를 설계할 것"이라고 말했다.

◆ 계층 간 갈등 우려 씻어야=세제를 차별화하면 가장 우려스러운 점이 계층 간 갈등이다. 이미 김병준 청와대 정책실장이 최근 "새로운 부동산 세제로 인해 증가하는 세수를 특정 부문에 활용하면 그로 인해 득을 보는 사람들이 생겨 제도를 유지하기 위해 감시하고 노력하게 될 것"이라고 밝혀 비싼 집이 많은 서울 강남에서 거둔 세금을 비강남 지역을 위해 쓸 수 있다는 뜻을 비쳤다. 이는 계층 간, 지역 간 대립을 부추겨 제도를 유지하겠다는 것 아니냐는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따라서 세제의 차등 적용은 적절히 운영하는 게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한양대 나성린 교수는 "부동산을 많이 가진 사람에게서 세금을 더 거둬 서민생활 안정에 쓰는 것은 필요하나 국민 편 가르기 식의 접근 방법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김종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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