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 라이프] 내숭은 NO 개인기 OK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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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절정이다. 성춘향과 이도령이 봄에 만났듯 봄은 사랑이 꽃피는 계절이다. 봄바람에 청춘의 가슴은 부풀어 오른다.

하지만 세상이 변한만큼 사랑을 찾는 청춘 남녀의 모습도 많이 변했다. 설레는 속내를 애써 감추고 은근한 눈빛을 던지던 미팅의 모습은 이제 찾기 힘들다.

여기 짝을 찾아 나선 청춘 남녀의 두 가지 모습이 있다. 어른들 보기엔 다소 망측할 수도 있겠다. '인스턴트 식 사랑'이라고 손가락질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요즘 남녀의 애정 방정식은 이렇듯 유쾌.발랄하고 솔직.대담해야 '정답'을 찾을 수 있단다.

◆단도직입

최근 서울 시내의 한 호텔 행사장. 1천명이 모여서 미팅을 했다. 결혼정보회사 선우가 기획한 이벤트다. 행사 진행요원 차림으로 4시간 동안 테이블 사이를 돌아 다녀봤다.

원형 탁자에 남녀 5명씩 앉기 시작했다. 누가 옆에 앉을지도 모르고 나온 청춘들.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상견례를 하더니 이내 웃음소리가 터져 나온다. 초면이니 서먹서먹하리라는 예상은 빗나갔다.

첫 인상이 중요하니까 다들 한껏 모양을 냈다. 그래도 등허리가 훤히 보이는 검정드레스를 입고 나온 여성은 좀 심해 보였다.

참가자들은 크게 A.B.C조로 나뉘었다. 나이별로 구분한 것. A조가 가장 나이가 많다. 한 사람이 모두 25명의 이성을 만날 수 있다. 하지만 비슷한 연령대 끼리만 가능하다.

따라서 A조가 C조와 만날 수 있는 공식적인 기회는 없다. 하지만 어디에나 튀는 사람은 꼭 있는 법. B조(20대 후반~30대 초반)의 남성 K씨는 1백장 들이 명함 3백장을 들고 휴식 시간 등을 틈타 사방을 헤집고 다녔다. 여성 명함만 70여 장을 거둬들였다.

행사가 무르익었다. 손 맞잡고 등 두드리는 '어린이용' 게임을 하면서도 모두 신나는 표정이다.

행사 막판 파트너 후보의 서명을 받는 시간. '눈 도장'을 찍은 파트너를 찾아가 '나 너 찍었으니 너도 나 찍어라'는 의미로 사인을 받아오는 이벤트다. '난리'가 났다. 남녀 가릴 것 없이 죄다 자리에서 일어나 보이는대로 사인을 받아낸다.

이날 모두 1백28쌍의 커플이 탄생했다. 14명으로부터 '러브 콜'을 받은 최고의 인기 참가자는 예상 밖으로 튀지 않는 외모에 학벌.직업.집안 모두 수수한 25세의 여성이었다.

◆놀자판 미팅 시대

지난 주말 경기도 양평의 펜션(고급 민박)집성촌인 양평 밸리. 여행사 '휴펜션'이 1박2일 일정의 '펜션 미팅'이란 걸 열었다. 휴펜션 관계자의 설명.

"상대의 프로필을 미리 알고 자리에 나가는 게 예전 미팅이라면 요즘의 이벤트성 미팅은 정반대다. 현장에서의 분위기와 재미, 느낌이 중요하다. 요즘 청춘이 외모.스타일.말솜씨를 중요시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해서 요즘들어 결혼정보회사들도 1:1 맞선을 대폭 줄였다. '놀자판 미팅'의 시대가 온 것이다. 여행.레저업계가 미팅 시장에 뛰어든 이유다."

결혼정보회사들에게 사실을 확인해 봤다. 서바이벌 게임 미팅.승마 미팅.행글라이더 미팅.왈츠&탱고 미팅.자전거 하이킹 미팅 등등. 알까기 미팅이란 것도 있었다.

'펜션 미팅'을 떠나는 남녀 30명이 서울에 모였다. 완전히 대학생 MT 가는 분위기다. 청춘의 마음은 이미 양평의 산골짜기에 가 있었다. 장담컨대 버스 안에서만 최소 다섯 커플은 눈치가 통한 것 같다.

어둠이 깔리자 바비큐 파티가 시작됐다. 여기저기서 자신이 찍은 파트너에게 상추쌈을 먹여준다. 영락없는 '닭살 커플'의 모습이다. 이어지는 개인기의 향연. 요즘 한창 인기라는 '쭉쭉춤'이 등장하더니 노무현 대통령 성대 모사도 나왔다.

개인기가 없으면 연애도 안되는 세상인가. 웃겨야 관심을 끌고 그래야 호감 가는 이성에 접근할 수 있단다. 시계추는 자정을 훌쩍 넘겼지만 청춘에겐 밤이 없다. 행사 진행원들이 억지로 방에 집어넣는다. 모두 네쌍의 커플이 공식적으로 연을 맺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청춘은 이미 연락처를 주고 받은 뒤였다.

손민호 기자
사진=임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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