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하자 소송 권하는 변호사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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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2009년 4월 완공된 경기도 광명시의 한 아파트 입주자 A씨는 최근 주민회의에 참석했다가 고민에 빠졌다.

 이 자리에 온 하자진단업체 관계자가 “아파트의 방화문과 타일이 불법으로 설치됐다. 입주민들이 속았다”고 밝히면서다. 사건을 수임하러 찾아온 변호사에게 법률 자문을 구하자 “하자 진단비용은 5500만원이고 건설사에 36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승소 시 승소금액의 18%를 달라고 했다. A씨는 신중하자는 입장이었으나 주민들 사이에선 “바로 소송을 하자”는 의견이 우세했다.

 서울 서초구 양재동의 한 아파트 주민들은 건설사를 상대로 65억원 상당의 손해배상소송을 청구했다. 손해액 산정 근거는 한 안전진단업체가 작성한 하자 진단서였다. 수년간 소송을 진행한 결과 판결을 통해 받은 돈은 1억8000만원이었다. 그나마 착수금과 법원 감정비, 기술자문료를 빼고나니 아파트 주민들에겐 3800만원이 남았다.

 아파트 하자 소송이 급증하면서 민사소송 분야의 블루오션으로 떠오르고 있다. 분쟁 대상인 아파트 보수비 규모는 연간 1조원대다. 이 분야 법률 시장 규모는 수백억원대로 추산된다. 하지만 소송에 이겨도 주민이 아닌 변호사들이 대부분의 돈을 챙겨 가면서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아파트 주민은 건설사에 입주 전후에 발견되는 하자에 대해 보수를 요구할 수 있다. 몇 년 전까지는 건설사가 보수 연한이 되면 알아서 고쳐주는 형태가 일반적이었다. 2000년대 들어 주민들이 권리 찾기에 나서면서 하자 소송 시장이 형성됐다. 2009년 금융위기 때부터 하자 소송 전문 법무법인도 등장했다.

 현재 10개의 전문 업체가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사건을 수임하고 있다. 업체 간 경쟁도 치열하다. 주민회의에 직접 출장 가서 설명을 하고 건설사 앞 주민 시위 독려를 위해 전세버스를 제공하기도 한다.

 서초동 법조타운에서 일하는 한 변호사는 “하자 소송의 증가는 아파트 값 하락과 법조계 불황이 만들어낸 ‘합작품’”이라고 분석했다.

 10월 말 현재 올해 서울중앙지법 14개 건설전담재판부에 접수된 사건은 1016건이다. 이 중 대부분은 주민들이 건설사를 상대로 낸 하자보수 소송이다.

 하지만 변호사 말만 듣고 하자 소송을 냈다 낭패를 보는 경우가 허다하다. 변호사 성공보수는 배상 판결 금액의 최고 30%까지 뛸 수 있다. 판결금액이 예상보다 많이 깎이거나 건설사 항소로 비용이 추가되면 주민에게 돌아가는 금액은 더욱 줄어든다.

 하자를 둘러싼 분쟁이 늘어나자 국토해양부는 2009년 하자심사분쟁조정위원회를 설치하고 조정을 통한 해결을 유도하고 있다. 조정위에서 문제가 해결되는 경우는 드물다. 하자 분쟁 접수 건수는 2009년 69건에서 지난해 1953건으로 28배가 늘었지만 조정건수는 35건에서 44건으로 제자리걸음이다.

하자 소송 전문인 정홍식 변호사는 “일부 변호사들이 받을 수 있는 금액을 과장하는 경우가 있어 재판 후 얼마 남지 않을 수도 있다”며 “건설사와 협의를 통해 보수를 하는 것과 소송을 하는 것 중 어느 게 실익이 있는지를 잘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전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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