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배구] 누가 퇴물이라 했나 '괴물' 봉쇄한 최석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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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구를 그만둘 생각이었는데…. 이런 날이 올 줄은 몰랐네요.”

 프로배구 남자부 한국전력은 3일 수원에서 열린 OK저축은행과의 경기에서 3-2로 승리를 거두고 시즌 7승째(5패·승점 22)를 거뒀다. 3위 대한항공(승점 25)과의 승차도 줄였다. 승리의 주역은 센터 최석기(28·1m98㎝·사진)였다. 최석기는 개인 최다 타이인 8개의 블로킹을 성공시키며 15점을 올렸다. 특히 OK저축은행의 주포인 시몬(2m6㎝)의 공격을 일곱 차례나 가로막았다.

 최석기는 한국전력 센터 ‘NO.4’다. 그는 후인정(40)·방신봉(39)·하경민(32) 등 쟁쟁한 선배들에게 밀려 좀처럼 기회를 잡지 못했다. 이날 경기 전까지 시즌 기록은 5경기에서 4득점이 전부였다. 그러나 이날은 1세트에 교체투입된 뒤 마지막까지 코트를 지켰다. 신영철 한국전력 감독은 “석기가 높이는 낮아도 발이 빠르고 블로킹할 때 손 모양이 좋다. 시몬의 타점이 초반보다 낮아져서 기대를 했는데 아주 잘 해줬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2008-2009 신인드래프트 2라운드 1순위로 한국전력 유니폼을 입은 최석기는 유망주로 기대를 모았다. 입단 첫 해에 블로킹 4위에 오르며 신인왕 투표에서도 황동일(삼성화재)에 이어 2위에 올랐다. 이듬해에도 블로킹 2위에 오르며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부상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2010년 9월 왼 무릎을 다쳐 수술을 받은 탓에 그 해엔 1경기만 뛰고 시즌을 날렸다. 이것만으로도 모자라 이듬해 4월과 8월, 두 차례나 재수술을 받았다. 세 번의 수술과 세 번의 재활 훈련. 그 1년 반 동안은 걷는 것조차 힘들었다. 그 동안 한전은 하경민을 현대캐피탈에서 데려왔고, 최석기는 설 자리를 잃었다. 경기에 출전하는 시간보다 ‘닭장’이라고 불리는 코트 구석 웜업존에서 기다리는 시간이 길었다. 최석기는 “정말 많이 울었다. 배구를 포기할 생각도 했다. 지난해 2월에도 또 같은 곳을 다쳤는데 이번에도 수술을 해야 하면 미련없이 은퇴하려고 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수술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진단을 받고는 배구화 끈을 고쳐맸다. 쉽지는 않았다. 무릎이 좋지 않아 남들처럼 훈련을 할 수도 없었고, 예전처럼 높게 점프를 할 수도 없었다.

 대신 빠른 발과 손을 활용하기 위해 애를 썼다. 최석기는 “아직까지 진행중이다. 경기에 나가고 싶은 생각은 굴뚝같지만 여전히 내가 부족하다는 걸 안다. 감독님 말씀에 따라 빨리 뛰어오른 뒤 손을 밀어넣는 연습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삼성화재는 4일 자신의 한 경기 최다 득점을 갈아치운 레오(54점)를 앞세워 우리카드를 3-2로 꺾었다. 삼성화재는 8연승을 달리며 승점 29(10승2패)로 선두를 질주했다. 여자부에서는 GS칼텍스가 KGC인삼공사를 3-2로 누르고 4연패에서 탈출했다.

김효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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