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일기' 전기철(1955~ )
가난한 밤은 길다
수녀들이 지나가고
신부들이 지나가고
골판지 박스가 오고
신문지들이 오고
밤은 천천히 걷는다
소주병들이 여기저기 흩어지며
욕설을 폭죽처럼 터뜨린다
차곡차곡 쌓인 하루 위에 몸을 눕히면
잠 속으로 발자국이 찍히고
아직 밥을 먹지 못한 영혼이 휘파람 소리를 키운다
밤은 저 홀로 깊어가고
잠들지 못한 이들의 신발은
발레를 하듯 절뚝인다
한밤중 서울역이나 영등포역 혹은 청량리역에 나가 보면 가난한 밤을 만날 수 있다. 길고 긴 가난한 밤 속으로 수녀들과 신부들이 지나가지만 그들(노숙자들)의 영혼은 구원받지 못한다. 폭죽처럼 터지는 욕설과 여기저기 널브러진 소주병들…. 저 빈 병들은 가공할 흉기가 될 수 있고 재활용으로 요긴하게 쓰일 수도 있다. 노숙자들이야말로 누군가 마시고 버린 빈 병들이 아닌가.
이재무<시인>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