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이슈] 대학가 '탈정치' 바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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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脫)정치적인 방법으로도 사회 문제를 인식하고 해법을 찾을 수 있다. 집회나 시위만으로 문제 해결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

연세대 윤한울 총학생회장은 17일 기자회견을 열고 "보수나 진보로 줄 세우려 하지 마라"며 이렇게 주장했다. 8.15 민족대축전 행사에 참여한 한총련 등에 숙박.집회 장소 제공을 거부한 배경을 설명한 자리였다.

8.15 축전은 대학가의 '탈정치' 바람을 확인시켰다. '민주화의 성지''통일 운동의 메카'로 불리던 대학이 진보적인 통일 운동 행사를 거부한 것은 과거와는 분명히 다른 변화다.

윤 회장은 "학교 구성원들에게 피해를 준다면 보수단체든 어디든 학내 집회를 반대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 활동이 필요하면 비용을 지급해서라도 체육관 등을 빌릴 수 있다는 논리다.

서울대 사회학과 한상진 교수는 "과거엔 청년 운동, 사회 운동에 대한 배려가 당연시됐지만 지금은 적법한 절차가 중요시되고 있다"며 "한총련 등이 과거처럼 밀어붙이기 식으로 접근하지 않는 것도 새로운 변화"라고 분석했다.

15일 진보단체들의 '자주평화통일 결의의 밤' 행사가 열린 경희대에선 총학생회가 학생들의 동의 없이 학교 이용을 허용했다는 비난을 받고 사과해야 했다. 경희대 관계자는 "행사가 끝난 뒤 30여t에 달하는 쓰레기로 학교가 몸살을 앓았고, 학생들은 '면학 분위기를 침해당했다'고 항의했다"고 전했다.

최근 서울대에는 '학생회 목에 방울 달기'라는 모임이 생겼다. 이 모임을 주도하는 김두현(20.수의학과)씨는 "총학생회의 활동을 감시하자는 취지"라며 "총학생회의 결정과 의견이 다르면 반대 성명을 낸다"고 말했다. 이런 변화가 대학가의 정치의식을 약화시키는 게 아니냐는 시각도 한쪽에 있다. 대학이 취업.고시준비 등 현실적인 문제에 매몰돼 '민주화의 성지'라는 자부심보다 '인력양성소'라는 자괴감에 빠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성균관대 조일훈 총학생회장은 "학생들의 관심사와 정치적 스펙트럼이 다양해진 만큼 과거처럼 일사불란한 집회나 시위로 정치 참여를 강요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밝혔다.

손해용.백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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