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국정원 수사, 짜맞추기 의심 안 받도록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안기부.국정원 도청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이 어제 국가정보원을 압수수색했다. 정보기관에 대한 압수수색은 사상 처음이고 다른 나라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압수수색을 당한 국정원으로서는 감내하기 힘들 정도로 충격이 크겠지만 오랜 기간 국민을 상대로 불법 감청을 자행한 범죄행위를 감안하면 불가피한 것이다.

압수수색은 국정원의 도청 내막을 철저하게 파헤치기 위해 꼭 필요한 수사상의 절차다. 도청과 관련한 각종 의혹을 해소하려면 불법 감청의 증거를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검찰의 압수수색이 실기를 한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국정원이 도청 사실을 공개한 것은 2주일 전이다. 그 사이에 국정원이 압수수색에 대비해 도.감청 장비와 도청의 결과물인 테이프와 녹취록을 폐기처분하거나 파기.소각 또는 은폐하는 등 증거를 인멸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국정원의 과거 도청에 관한 고백과 현재는 도청이 없다는 주장이 신뢰를 얻으려면 국정원은 검찰 조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해야 한다. 하지만 국정원의 태도와 자세를 보면 전혀 그렇지 않아 과연 도청 과정과 실태가 제대로 규명될지 의문이다. 국정원이 검찰에 제출한 자료는 매우 부실해 수사 단서로 활용하기가 곤란하다고 한다. 또 국정원의 도청조직 미림팀 활동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전.현직 직원들이 대거 검찰의 소환에 불응하고 있다. 수사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국정원장의 장담은 공염불이 된 셈이다.

국정원의 자발적인 협조를 기대하기 어려운 만큼 검찰이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다. 국정원 직원들의 출두 거부를 핑계로 수사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만약 그렇다면 국정원 측에 면죄부를 주는 것이다. 검찰은 눈가림식으로 수사한다는 의심을 받지 않도록 하라. 수사에 진지함과 결의가 담겨 있어야 한다. 책임자는 당연히 사법처리해야 할 것이다. 국정원이 도청의 유혹을 더 이상 느끼지 못하도록 하는 확실한 방법은 도청의 전모를 백일하에 드러나게 하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