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거액 금품·향응 받고 인력송출업체 비리 방영 의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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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사기 혐의로 구속된 홍모(64)씨가 청탁의 대가로 방송사와 수사기관 관계자들에게 금품을 건넨 정황이 포착돼 수사에 나섰다고 18일 밝혔다.

경찰은 네팔에 있는 한 인력송출업체 대표로부터 "한국의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가 인정하는 인력송출업체로 지정받을 수 있도록 도와 달라"는 부탁과 함께 1억3000여만원을 받은 혐의로 16일 홍씨를 구속했다.

경찰은 홍씨를 상대로 네팔 업체에서 받은 돈의 사용처를 수사하다 "돈의 사용 내역을 모두 적어뒀다"는 진술을 받아내고, 홍씨의 비밀 다이어리를 압수했다. 이 다이어리에는 검찰과 경찰.방송사 관계자들에게 1인당 100만~수천만원 상당의 돈과 향응을 제공한 정황이 기록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장부에는 전.현직 부장검사 등 검찰 관계자 4명, 현직 경찰서장 등 경찰관 6명, 국장급 간부 및 기자를 포함한 MBC 관계자 6명, 금융기관 간부 4명 등 20명에 가까운 인사들의 이름이 적혀 있다"고 밝혔다.

경찰은 특히 홍씨가 돈을 받은 네팔의 인력송출 업체와 경쟁관계에 있는 회사의 비리를 2003년 말 MBC 측에 제보했으며, MBC는 지난해 1월 관련 보도를 내보낸 사실을 확인했다. 경찰은 이 과정에서 홍씨가 MBC 고위 간부와 기자 등에게 3500만원 상당의 금품과 향응을 제공한 단서를 포착하고 보도의 대가성 여부에 대해 수사 중이다. 경찰은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18일 MBC 관계자들을 소환해 조사했으며, 조만간 다이어리에 이름이 적혀 있는 MBC 간부도 조사할 방침이다.

경찰 관계자는 "다이어리에는 홍씨가 금품과 향응을 제공한 시점은 물론 당시 상황과 접대 내용이 자세히 기록돼 있다"며 "장부대로라면 홍씨가 청탁성 보도를 요청하면서 향응과 금품을 줬기 때문에 MBC 관계자들에게 배임수재 혐의를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또 홍씨가 다이어리에서 검찰과 경찰 관계자들에게 수천만원 상당의 금품과 향응을 제공한 것으로 기록된 부분을 발견, 내용의 진위와 사건 청탁 관련성 등을 조사 중이다. 다이어리에는 검찰 관계자에게 최고 600만원 상당의 금품과 향응이 제공된 것으로 기록됐다고 경찰은 밝혔다.

한편 대검은 홍씨로부터 금품과 향응을 받은 의혹이 제기된 검사 등에 대한 감찰에 착수했다. 경찰도 관련 경찰관에 대한 수사를 벌이고 있다. 홍씨 다이어리에 적혀있는 검찰과 경찰 관계자들은 "오래 전부터 홍씨를 만나 술과 밥을 함께 먹은 적은 있지만 특정 사안을 대가로 금품을 받은 적은 없다"고 해명했다.

손해용.임장혁 기자

간부 등에 3500만원 상당 현금.향응
보도 뒤 경쟁업체 인력송출 영업 타격
MBC선 "사실 아니다"

경찰은 홍모(64)씨가 1억3000만원을 받은 네팔의 한 인력송출업체와 경쟁관계에 있는 회사에 타격을 주기 위해 MBC를 이용했다는 의혹에 대해 수사를 집중하고 있다.

돈이나 술접대 등을 받은 사람과 날짜.장소까지 꼼꼼히 적어 놓은 A4용지 크기의 홍씨 다이어리가 수사의 단서가 됐다.

경찰에 따르면 홍씨의 다이어리에 나와 있는 MBC 측 로비대상자는 보도 담당 간부와 행정담당 간부, 기자와 시사프로그램 작가 등 7명이다.

다이어리의 내용대로라면 홍씨가 MBC를 상대로 로비를 벌이기 시작한 것은 2003년 9월 22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홍씨는 당시 서울 강남의 한 일식집과 룸살롱에서 행정담당 간부에게 250만원 상당의 향응을 제공했다. 10월 9일에는 강남의 한 음식점 등에서 보도담당 간부를 포함한 4명을 상대로 400만원 상당의 향응을 베풀었다. 이후 MBC 본사 앞에서 행정담당 간부에게 수차례에 걸쳐 금품을 전달했다는 것이다.

다이어리에는 홍씨가 이들 7명에게 2003년 9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14차례에 걸쳐 총 3500만원 상당의 현금과 향응을 제공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이처럼 홍씨가 MBC에 대해 대대적인 로비에 나선 것은 네팔의 해외인력 송출 사업자 선정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한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당시 네팔 근로자들에게서 돈을 받고 우리 업체와 연결시켜 주는 '해외인력 송출업체' 선정을 두고 S사와 M사가 경합을 벌였고, 1차 사업자로 M사가 선정되자 S사 측에서 홍씨를 로비스트로 고용해 MBC 측에 선을 대려한 것이다.

이후 홍씨는 보도담당 간부들을 접촉해 M사의 비리 내용을 제보했고, 실제로 MBC 측은 지난해 1월 11일 시사 프로그램을 통해 M사의 인력송출 비리를 보도했다. 다이어리에는 홍씨가 네팔에 출장 가는 취재팀에 450만원의 경비를 제공한 것으로 기록이 남아 있다.

방송 보도 이후 M사 등은 경찰의 조사를 받아 영업에 상당한 타격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방송 뒤에도 S사가 인력송출업체로 지정되지 않자 S사 측에서 3월 홍씨를 사기 혐의로 고소하면서 실체가 드러났다"고 말했다. 경찰은 최근 다이어리에 기록돼 있는 MBC 기자 한 명만 소환해 조사했다. 그러나 나머지 관계자들은 출두를 거부해 수사에 애를 먹고 있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MBC 측은 "자체 조사 결과 홍씨의 다이어리에 적혀 있는 내용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했다"며 "다만 홍씨와 평소 친분이 있던 기자 한 명이 그에게서 3년 전 찬조금 명목으로 100만원을 받은 것은 시인했다"고 밝혔다.

손해용.임장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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