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깊이보기 :10년 불황 미술시장

사고팔기 힘든 구조…소비자 신뢰 잃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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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한국 미술시장이 10년 장기불황에 허덕이고 있다. 단순히 경기침체에 따른 동반침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일반인의 미술품에 대한 관심은 과거 어느 때보다 높은데 미술시장은 왜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 것일까. 구입한 작품을 적정한 가격에 되팔기 어렵고, 세월이 흘러도 가격이 오르기는커녕 오히려 내리는 게 현실이다. 이래서는 미술시장이 살아나지 못한다. 한국 미술시장의 구조적 한계는 무엇인지, 악순환을 선순환으로 돌릴 방법은 없는 것인지 살펴본다.

▶ 미술시장 확대와 수요 창출을 위한 세계 각국의 아트페어(미술견본시) 경쟁이 뜨겁다. 스페인이 정부 차원에서 키우고 있는 국제아트페어 '아르코'(사진)는 2004년 미국 '아모리' 아트페어와 업무제휴를 맺어 세계 미술시장에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게 됐다. 한국도 국제적인 아트페어 운영에 더 힘써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세계 미술시장이 호황이다. 일각에서는 호황을 넘어 거품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아시아도 마찬가지다. 중국의 붐은 특히 괄목할 만하다. 지난 7월 12일 런던 크리스티 경매에서는 원나라 때의 청화백자가 1570만 파운드(약 289억원)에 낙찰되어 경매 사상 최고의 도자기 가격, 동양 미술품으로서의 최고가를 기록했다. 7월 29일, 베이징의 한 경매에서는 장다첸(張大千)의 산수화가 중국 서화로서는 경매 사상 최고가인 7300만 위안(약 94억 원)에 팔렸다.

5, 6월에 있었던 춘계 메이저 세일에서는 자더(嘉德)라는 한 경매회사에서만 무려 6억 위안(약 777억원)의 거래액을 보였다. 이런 중국 미술시장의 신바람에 대해 한 외지의 특집기사는 단순한 경제 현상만이 아닌 '중화 사상의 부활'이라고 썼다.

우리 미술시장의 침체를 개탄하는 목소리가 높다.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건만 이웃에 대비되어 불황의 어둠은 더욱 짙어 보인다. 가난한 가운데 이전투구의 싸움만 격하다. '이중섭 위작(僞作)사건'이 그렇고 '미술 은행(art bank)' 제도 운영을 둘러싼 논쟁이 그렇다.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우리 미술시장의 문제는 자명하다. 소비자 신뢰를 잃은 것이다.

미술품은 정서적으로 보면 예술이지만 경제적으로 보면 상품이다. 상품 중에서도 자동차나 냉장고처럼 쓰다 버리는 소비재가 아니라 주식이나 부동산과 같은 자산이다. 자산의 거래가 활발하기 위해서는 그 가격이 합당해야 하며 원하는 때에 현금화할 수 있는 유동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이것이 소비자의 신뢰를 담보한다.

경매회사 대표를 맡고 있을 때의 일이다. 한 노인이 찾아왔다. 한때는 경제적으로 넉넉했고 미술에 취미가 있어 열심히 수집했다. 이제 나이도 들고 사업이 기우는 바람에 소장품을 정리해야 했지만 백방으로 노력해도 팔 수가 없었다.

구입했던 화랑을 찾아도 외면받기는 마찬가지였다. 마지막으로 경매회사를 찾은 것이다. 경매를 통해 팔아드린 돈은 구입액의 5분의 1쯤에 불과했으나 노인은 고맙다고 했다. 그때 경매에 올린 작품 중의 한 점 때문에 어느 화랑 주인으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았다. 공교롭게도 경매를 한 바로 그 작가의 전시회가 그 무렵 그 화랑에서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전시가격 1000만원인 작품과, 같은 크기에 같은 수준의 미술품 경매 낙찰가격이 200만원에 불과했고, 이것이 소문이 나서 한 점도 못 팔았다는 것이다.

경매회사로서는 그 노인의 입장이 되어보라고 얘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가.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바로 우리 미술계의 문제점인 이중가격 때문이다. 이 작품의 가격은 1000만원인가 200만원인가? 삼성전자 주식의 가격은 삼성전자가 정하는가, 증권회사가 정하는가, 아니면 투자자들이 정하는가? 소비자가 받아들이지 않는 가격은 가격이 아니다. 특이하게도 우리나라의 소위 대가(大家)라는 사람들은 작품값을 본인 자신이 정한다. 삼성전자가 스스로 주가를 정하는 격이다. 어느 나라 미술시장에도 없는 관례다.

한국 미술시장의 문제점을 얘기하다 보면 재미있는 현상을 마주하게 된다. 작가와 화랑과 경매회사가 서로 손가락질한다.

삼자 논쟁에 시장의 '주역'인 소비자는 소외된다. 기껏해야 "우리나라 사람들은 미술을 몰라. 컬렉터가 너무 없어. 화랑 숫자보다도 컬렉터 수가 적다니까" 하는 식으로 논쟁의 '단역'으로 등장하여 비난의 대상이 된다. 과연 그러한가. 우리는 예술을 모르는 국민인가.

최근 해외 미술품 수입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통계에 따르면 2004년도 해외 미술품 수입액이 950억원에 이르러 국내 작가의 미술품 거래액(속칭 이발소 그림 및 공공 미술품 제외)을 훌쩍 뛰어넘었다. 이 사태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소비자 입장에서 보면 자명하다.

해외 미술품의 가격은 꾸준히 오르고 있고 가격도 객관적일 뿐만 아니라 쉽게 팔 수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시장에는 선(善)도 악(惡)도 없다. 이해(利害)만 있을 뿐이다. 시장 참여 주체들은 각자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행동한다. 선과 악으로 시장을 파악해서는 답이 나오지 않는다. '소비자는 왕'이라는 구호를 새삼 떠올리지 않아도 시장의 중심에는 소비자가 있으며 소비주체 역시 그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행동한다. 소비자에게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그들에게 주권을 돌려주어야 한다.

서양의 미술품 유통이 경매를 중심으로 확장되어 온 것은 소비자가 쉽게 사고 팔 수 있으며 그들이 가격을 결정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최근 비약적 발전을 보이고 있는 중국 미술시장 역시 그 중심에는 경매회사가 있다.

우리 미술시장에서 '경매회사 때문에 못해 먹겠다'는 얘기는 이미 구호처럼 되어버렸다. 그러나 정부에서도 경매의 순기능에 주목하고 있다. 때로 미술인은 미술시장 침체에 대해 정부를 탓했다. 그렇지만 미술시장을 이처럼 공정하고 적극적으로 부양하려는 의지를 보여준 정부를 찾기란 쉽지 않다. 미술품 양도소득에 대한 과세법안 폐지, 법인 구입 미술품에 대한 업무용 자산 인정과 일정 금액에 대한 손비 인정, 미술은행 제도 도입 등이 그것이다. 이로써 우리 미술시장의 정책적 환경은 어느 선진국 못지않게 되었다.

그런데도 미술시장은 요지부동이다. 반복하건대 미술시장이 신뢰를 보여주지 않는 한 백약이 무효다. 정부의 정책이 미술품의 수요 진작에 맞춰져 있으나 신뢰가 없는 시장에 수요는 일어나지 않는다. '이중섭 위작 사건'의 소용돌이 속에서 경매회사의 도덕성이 도마 위에 올랐다. 이 사건은 경매회사의 대처 과정에서의 미숙함에도 불구하고 경매회사의 필요성을 역설적으로 웅변해 준다. 작품의 진위와 무관하게 소비자는 피해를 보지 않았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경매에 올랐기 때문에 진위 여부가 공론화되었고 작품의 낙찰이 취소되었다. 만약 이 작품이 경매를 통하지 않고 거래되었다면 진위에 따른 위험은 고스란히 구매자의 몫이었을 수도 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작품 감정에 대한 정부 기구가 있어야 한다는 여론도 있다. 그렇지만 작품의 진위 여부에 대한 판단에 공권력이 개입하는 나라는 없다. 이는 미술인 고유의 책임이다. 미술인이 우리 미술시장 문제의 본질을 직시하고 모두가 자기 책임임을 받아들이지 않는 한 우리 미술시장의 미래는 암울하다.

김순응 <미술시장 애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