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프레레호 또 침몰 … 인내는 끝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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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 독일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A조 마지막 경기에서 사우디아라비아에 0-1로 진 한국 대표 선수들이 허탈한 표정으로 그라운드를 빠져 나오고 있다. 박종근 기자

요하네스 본프레레 감독은 끝내 기대를 저버렸다. 유럽파까지 불러들였지만 그는 한국 축구의 매운 맛도, 자신만의 색깔도 보여주지 못했다.

6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을 달성하긴 했지만 그는 팬들의 "물러나라"는 성난 목소리에 직면하게 됐다. 동아시아대회 부진으로 여론이 나빠지자 대한축구협회는 "사우디전까지 지켜보자"고 했다. 축구협회도 더 이상 본프레레를 감싸안기 힘든 상황이 됐다.

한국 축구대표팀은 17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진 사우디아라비아와의 2006 독일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A조 마지막 경기에서 0-1로 졌다. 사우디에만 2패를 당한 한국은 3승1무2패(승점 10)로 조 2위, 사우디가 4승2무(승점 14)로 1위가 됐다.

3월 0-2로 완패한 '담맘 쇼크'의 재판이었다. 본프레레는 칼데론 사우디 감독의 지략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사우디는 경기 시작하자마자 세찬 공격을 펼쳤고, '상대가 수비 중심으로 나올 것'이라고 예상했던 한국 선수들은 크게 당황했다. 3분 만에 모하메드가 헤딩골을 넣은 사우디는 곧바로 잠그기에 돌입했다. 사우디는 포백이 측면 쪽에 철저한 방어막을 쳤다. 그런데도 본프레레는 3-4-3 포메이션에 측면 돌파만을 고집했다. 게다가 몸이 무거운 오른쪽의 이영표-차두리 쪽에 공이 집중됐다. 차두리는 잦은 볼 트래핑 실수와 패스 미스로 경기 흐름을 끊었다.

한국은 전반 7분 백지훈의 헤딩슛이 골키퍼 선방에 걸렸고, 30분쯤 안정환의 두 차례 날카로운 슛도 골대를 외면했다. 본프레레는 극도로 부진했던 차두리를 후반 10분에야 정경호로 바꿨다. 그렇지만 전술의 변화는 없었다. 포백을 깨기 위한 약속된 플레이도, 2선에서의 날카로운 침투도 보이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후반 29분 김동진이 거친 플레이로 퇴장당했다. 한국은 15분을 남기고 조재진까지 넣어 사우디 골문을 두드려 봤지만 정교하게 방어막을 친 사우디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경기가 끝난 뒤 6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을 축하하는 공연이 시작됐지만 10개월도 남지 않은 본선에 대한 걱정과 잘못 뽑은 감독에 대한 한탄만이 '2002월드컵의 성지'를 덮고 있었다.

정영재.성호준 기자 <jerry@joongang.co.kr>
사진=박종근 기자 <jokepark@joongang.co.kr>

강팀에 1승2무6패 '주눅'
월드컵 본선 경쟁력 없어

본프레레 감독이 지난해 6월 사령탑을 맡은 이후 한국 대표팀은 1년여 동안 25차례 A매치에서 10승8무7패(34득점 20실점)의 성적을 거뒀다. 그러나 허수가 많다. 세계랭킹 35위 이내의 팀과의 경기에서는 1승2무6패로 철저히 무기력했다. 약팀에는 대체로 강했지만 강팀에는 철저히 약했다. 세계 32강이 출전하는 월드컵에서 경쟁력이 거의 없다.

지난해 12월 본프레레호는 부산에서 독일(11위)에 3-1로 이겼다. 당시 독일은 미하일 발라크 등 주전선수들이 대부분 참가했기 때문에 독일로 가는 본프레레호는 욱일승천의 기세를 탄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후 한번도 강팀들을 이기지 못했다. 동아시아선수권에서 일본(17위)에 0-1로 졌고, 사우디에 다시 졌다. 한국은 해외파까지 불러들였고, 사우디는 1.5군이어서 더욱 쓰라리다.

성호준 기자

본프레레 "최종예선 통과했는데 야유 보내다니 …"

▶동아시아선수권 후반부터 팀플레이가 좋아졌는데 해외파가 합류하면서 호흡이 나빠졌다. 그렇지만 월드컵 본선에서 뛸 선수를 찾기 위해 해외파를 기용해야 했다. 월드컵 16강 진출은 희망적이라고 본다. 그러기 위해 함께 훈련할 시간이 필요하다. 야유를 보낸 관중은 월드컵 최종예선을 어렵게 통과한 사실을 너무 쉽게 잊은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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