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금리하락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미국의 고금리와 달러화 강세가 고개를 숙이면서 새로운 경기회복의 기대감이 번지고 있다. 만일 이 같은 기대감이 각국의 기업가와 소비자들에게 확산된다면 3년여에 걸친 지루한 세계경제의 불황은 또 다른 국면을 맞을지도 모른다.
현재 진행되고있는 변화 가운데 두드러진 것은 오직 미국의 금리인하와 이에 따른 국제금융, 자본시장의 반사적 충격뿐이다. 그런데도 그 충격의 파장이 범세계적으로 확산되는 속도는 매우 빠른 것 같다. 그것은 무역이나 투자 등 어떤 실체적 움직임이라기보다 아직은 다분히「정신적」인 차원에 머무르고있다. 불황의 돌파구를 찾지 못해 참담한 지경에 빠져있는 세계경제로서는 미국의 금리하락만으로도 충분한 쇼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긴축과 레이거느믹스로 대표되는 미국경제의 실험이 줄곧 세계 각국의 비명과 지탄의 표적이 되면서도 그 귀추가 주목되어온 것은 한마디로 미국경제의 견고한「기반」과 영향력 때문이다. 특히 위기적 경제상황일수록 견인의 역할을 강요당하고 그린 배경 때문에『위기에 강한 달러』가 가능해왔다. 그러나「레이건」의 실험은 이런 바깥상황이 아닌 정치적인 이유로 더 이상 진행하기 어려워졌다. 대공황 이후 기록적인 실업률이 그것을 어렵게 만들었다.
완강한「볼커」연준 이사장이 긴축의 완화와 금리인하를 발표하고 연방정부가 10%를 넘어선 실업에 새로운 대처를 모색하게 된 것은 중간선거를 의식한 불가피한 레이거느믹스의 수정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의 변화로 주요은행의 프라임 레이트는 10월 이후 계속 하락, 12% 선으로 떨어졌다. 다우존즈 산업지수도 15개월만에 다시 1천 포인트 선을 넘어서고 겨우 숨을 돌린 영국의 금리도 9%대로 내려앉았다.
고금리로 인한 국제금융의 경색이 완화될 경우 각국은 보다 쉽게 경기부양책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영국, 서독, 일본은 이미 진작부터 국내 실업을 줄이기 위한 다양한 경기대책을 마련해 놓고 미국의 선거를 기다려왔다. 지금의 추세 대로면 연말까지는 10%선의 금리인하가 가능하고 적어도 내년부터는 각국의 경기대책에서 인플레 압력을 어느 정도 회피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미국을 포함하여 선진공업국 거의 모두가 심각한 재정적자를 안고있는 점이다. 경기대책을 재정적자의 누적 없이 수행할 수 있는 나라는 거의 없다. 때문에 민간의 자발적 투자를 기대하는 바람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질 것이다. 이점에서 보면 세계경기의 회복은 설사 그것이 가능하다해도 매우 더뎌질 것이 분명하다. 장기간의 불황으로 기존의 국제협력채널이 크게 위축된 것도 세계경기의 확산에 장애가 될 것이다.
아마도 가장 중요한 장애는 국제금융의 재원경색에서 맞을지도 모른다. 개도국들의 누적채무가 신용공황의 우려로 번지고있는 현실에서 금리인하가 얼마나 큰 숨통을 틔어 줄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결국은 인플레 없는 세계경기회복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각국의 대내정책뿐만 아니라 녹슬어버린 모든 기존의 국제협력체제를 부활시키는 노력이 함께 갖추어져야할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