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검찰, 청와대 문건 유출도 성역 없이 수사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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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박근혜 대통령이 1일 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에 대해 “결코 있을 수 없는 국기문란 행위”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이번에 문건을 외부로 유출한 것은 어떤 의도인지 모르지만 반드시 바로잡아야 할 적폐 중 하나”라고 했다. 대통령은 “검찰은 내용의 진위를 포함해 모든 사안에 대해 한 점 의혹도 없이 실체적 진실을 밝혀달라”고 주문했다.

 이에 대해 새정치민주연합 박범계 진상조사단장은 “대통령 말씀의 대부분이 문건 유출에 주로 포인트가 맞춰져 수사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건 아닌지라는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문건 내용의 진상을 밝히는 게 중요한데 유출과정 규명을 너무 강조했다는 불만이다.

 검찰이 문건 내용의 진위 여부를 수사해야 하겠지만 작성·유출 경위를 밝혀내는 것도 중요하다. 누가 어떤 의도로 문건을 작성해 유출했는지를 규명하는 것은 내용의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작업이기 때문이다. 또 청와대 문건을 유출하는 것은 범죄행위다.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은 공공기관의 기록물을 무단으로 은닉하거나 유출한 경우 3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문건을 유출하지 않았더라도 비밀을 누설하면 2년 이하의 징역을 받게 돼 있다. 누군가 문건을 몰래 복사해 유출했을 경우 6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는 절도죄로 무겁게 처벌된다.

 만약 내부 권력투쟁 과정에서 상대편을 공격하기 위해 문건을 작성·유출했다면 대통령의 말대로 국기를 어지럽히는 행위다. 사기업 등 일반 조직에서도 내부 문제를 담은 정보보고가 밖으로 새나갈 경우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여 엄정히 대처한다. 하물며 국정운영의 최종 책임을 지는 청와대의 내부에서 만들어진 문건이 유출된 것은 보안과 기강 차원에서 철저히 조사해 책임자를 엄벌해야 한다.

 누가 문건을 유출했는지를 놓고 당사자들은 서로 다른 주장을 하고 있다.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에 파견근무했던 박모 경정은 “문건을 유출한 사실이 없다”며 강력히 부인하고 있다. 또 청와대에 근무했던 관계자는 “공직비서관실 소속이 아닌 청와대 내부 인사가 ‘정윤회동향문건’ 등 각종 보고서를 빼돌린 뒤 한 검찰 수사관에 넘겨 외부로 유출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청와대는 내부 보안구조상 박 경정이 아닌 제3자가 문건을 복사하거나 유출시켰을 가능성이 작다고 보고 있다.

 비선 조직의 실세로 지목된 정윤회(59)씨는 지난달 30일 본지 단독인터뷰에서 “통화기록이든 CCTV든 나에 관한 모든 것을 수사하라. 하나라도 잘못이 있으면 감방을 가겠다”고 말했다. 당사자가 수사에 적극 응하겠다는 뜻을 밝힌 만큼 검찰은 관련자들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법원으로부터 발부받아 신속한 증거 수집에 나서야 한다. 관련자들을 소환조사하는 것은 물론 통화기록, CCTV 녹화기록 등을 확보해 사실관계를 철저히 확인해야 한다. 문건 내용이 시중에 떠도는 풍문을 모은 ‘찌라시’인지, 어느 정도 근거가 있는지도 샅샅이 밝혀내야 한다. 만약 검찰이 성역을 의식해 소극적으로 수사한다면 국민의 의혹은 더 커져 상설특검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의혹이 남는 미진한 수사는 결국 정권에 치명상을 입히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