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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 10% 더 떨어지면 세계 경제성장률 0.2% 상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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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석유는 경제를 움직이는 ‘혈액’이다. 자동차와 비행기·배를 움직이고, 플라스틱 등 각종 소재의 원료로 쓰인다. ‘산업의 쌀’인 전기를 만드는 데도 꼭 필요하다. 각국이 유가 변동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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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석유가격 하락은 아직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충격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세계 경제에 긍정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유가가 10% 떨어지면 전세계 경제성장률이 0.2% 높아진다고 추정했다. 원유수출국은 무역수지(-0.7%)가 악화 되지만 중국 등 원유수입국이 저(低)유가의 혜택을 본다. KB투자증권 김성노 이사는 “지금처럼 공급이 늘어 유가가 떨어지는 상황은 에너지 수입국인 아시아 신흥국과 일본·유럽에는 긍정적”이라고 분석했다.

 한국은 세계 8위 석유소비국이자 세계 5위 원유수입국(무역협회 ‘세계속의 대한민국’)이다. 매년 약 100조원을 석유수입에 쓴다. 단순 계산으로 유가가 10% 떨어지면 10조원 가량을 아낄 수 있는 셈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유가가 10% 내려가면 국내총생산(GDP)는 0.27% 늘어나는 효과가 있다”고 추산했다. 소비(0.68%)와 수출(1.19%)이 늘어나는 덕분이다.

 유가가 내려가면 가계는 소비여력이 늘어난다. 석유를 원료로 한 제품가격이 떨어지고, 자동차 연료비·난방비 등에 들어가는 돈이 줄어 다른 곳에 돈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생산 원가 하락으로 국내 기업들의 수출경쟁력도 높아진다. 하이투자증권 박상현 연구원은 “최근 유가 하락과 원화 약세가 맞물리고 있어 내년 2분기쯤부터는 제조업 경기가 반등할 거라 본다”고 내다봤다. 업종별로는 명암이 갈릴 수 있다. 연료비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항공 등 운송업종은 숨통이 트이게 됐다. 하지만 정유·조선 업종은 울상이다.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감산 합의에 실패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28일, 주요 정유주와 조선주는 5% 넘게 급락했다. 반면 대한항공(4.74%)과 아시아나항공(9.73%)은 크게 올랐다.

 다만 커지고 있는 디플레이션 우려는 주의가 필요하다. 하나대투증권 김두언 연구원은 “유가 하락폭을 감안할 때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대를 넘기기 어려울 것 같다”고 전망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유가가 10% 하락하면 물가는 0.46% 떨어질 거라고 추산했다.

 추가 경기부양책을 준비하고 있는 유럽과 일본에 유가 하락은 ‘울고 싶은데 뺨 때려 주는 격’이다. 유가가 낮아지면 물가상승률이 떨어져 디플레이션 가능성이 커진다. 중앙은행 입장에선 돈을 더 풀 수 있는 명분이 생기는 셈이다. 그러나 산유국은 타격이 불가피하다. 원유 수출 의존도가 높은 러시아와 베네수엘라는 모라토리엄(채무불이행) 우려까지 나온다. 최근 안톤 실루아노프 러시아 재무장관은 “올해 유가 하락과 서방의 경제 제재로 입은 손실이 1400억달러에 달한다”고 추산했다. 지난해 러시아 GDP의 6.7%에 달하는 금액이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0%로 잡았다. 경제가 본전만 지켜도 선방이라는 뜻이다.

 가격 하락이 원자재 전반으로 확대될 경우 브라질 등 원자재 수출국들이 잇따라 충격을 받을 수도 있다. 원자재값은 달러가치와 반대로 움직이는 경향이 있다. 지금처럼 원유값이 떨어지면 달러화는 강세를 보이게 되고, 이 때문에 다른 원자재들이 연달아 약세를 보일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28일 국제 금값은 1.79% 급락했다. 원자재 수출국이 타격을 입으면 한국도 자유롭지만은 않다. 신한금융투자 윤창용 연구원은 “중동과 중남미·러시아에 대한 한국의 수출의존도는 14%로 높은 수준”이라며 “원자재값이 떨어지면 이들 국가에 대한 수출이 줄어들 수 있다는 점은 부담”이라고 설명했다.

이한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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