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9기 KT배 왕위전' 한 수 더 본 이창호 9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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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제39기 KT배 왕위전
[제8보 (128~141)]
黑. 왕 위 이창호 9단 白. 도전자 옥득진 2단

평균대에 선 어린 기계체조 선수가 간발의 실수로 굴러 떨어진다. 연습 때는 잘했는데 아쉽게도 실수를 범하고 말았다. 그러나 메달은 사라지고 기회는 다시 오지 않는다. 승부란 그래서 비정하다. 옥득진 2단이 전보에서 범한 실수는 너무도 사소한 것이었으나 그 파장은 중앙 일대로 들불처럼 번져가고 있다.

이창호 9단은 128로 머리를 붙여 대마를 봉쇄한다. 무쇠 같은 힘이 느껴지는 한 수다. 이창호란 사람은 두터워지면(불안감이 사라지면) 힘을 몇 배로 낸다. 상대의 엷음을 간파하고 그를 요리하는 데 천부적이다. 모름지기 이창호와 대적하려면 그의 마음속에 불안감을 남겨둘 수 있도록 힘써야 한다.

당황하던 옥 2단이 순간 무언가를 봤다. 흥분이 밀려온다. 129를 선수하고 131로 힘차게 젖히면서 그는 백의 약점을 제대로 붙들었다고 믿었다.

이 흑이 연결된다면 바둑은 역전되고 말 것이다. 그런데 백은 과연 차단하는 수가 있을까.

▶ 참고도 1

▶ 참고도 2

이창호는 그러나 132를 선수한 다음 곧장 134로 차단해 온다. 갑자기 옥득진은 가슴이 답답해진다. '참고도1'처럼 끊고 돌파하면 바로 연단수인데 상대는 뭘 믿고 있을까. 하지만 이창호란 사람이 두었으니 반드시 무언가가 있는 것이다.

비로소 옥득진의 눈에도 수가 보인다. '참고도 2' 흑 1로 끊을 때 백은 잇지 않고 2, 4로 먼저 끊는다. 흑을 자충으로 몰아넣은 다음 비로소 8로 이으면 아무 수도 없다. 망해버린다.

옥득진은 뒷머리가 뜨끈뜨끈해진다. 141까지 대마는 살렸으나 쌈지를 뜨고 있다. 백의 약점을 노리려던 흑▲가 처량하기만 하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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