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전의 애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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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소를 팔 때에 나는 울었다./아버지를 따라
읍내 쇠전에 갔을 때/젖이 불어 새끼를 찾는
소들이/젖이 그리워 어미를 부르는 소들이/말
뚝에 매여/그 무엇보다도 길게 울음을 보내고
있을 때/나는 소로 태어나지 앉은 것이 고마
왔다.
머언 산을 바라보고 있는 소/두려움으로 커
진 눈을 굴리며/제집을 생각하는 소/살지 죽
을지 바짝바짝 속이 타서/마려운 똥도 참고있
는 듯/고개를 땅에 처박고 있는 소.
만약에 소가 고삐를 끊고/앞으로 뿔을 눕혀
돌진한다면/온 장바닥을 휩쓸어 피바다를 이루
고/그리고는 시원스럽게 오줌을 내갈긴 다음/
들 밖으로 산으로 어둠 속으로/달아날 힘도 능
히 지녔으련만/소들은 제 말뚝에 여전히 매여
있었고/한결같이 유순하기만했다.
또 어떤 소의 주인은/한바퀴 뺑뺑이를 돌린
다음/이만하면 어떠냐는 부푼 가슴으로/소보다
큰 웃음을 히죽이 웃고 있었고.
또 어떤 칼잡이가/소의 이마를 사랑스럽게 쓰
다듬자/뿔이라는 무기를 지닌 황소는 황소대로/
도끼가 제머리의 급소에 떨어질때/이렇게 숙여
주면 되겠지하는 식으로/숙명의 머리를 숙이고
있었고.
나는 소가 불쌍했다. /제가 가진 노동력을 다
주었고/밑거름을 빚어 제공했으며/제가 숙일 수
있는 머리를 끝까지 숙여/마지막엔 제 살 뼈 가
죽까지 바쳤어도/소가 소 이상일 수 없는 소.
나는 소가 성자처럼 위대하게 보였다./그러
니 소를 마땅히 놓아주든지, 소가 대접받는 인
도로 보내든지/소를 받드는 새 법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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