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한 건축학자의 일갈 “세빛섬은 왜 둥둥 떠 있기만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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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건축 이전의 건축,
공동성
김광현 지음, 공간서가
432쪽, 2만8000원

“유럽의 도시와 시골 마을을 지나면 그들의 건축이 자연과 얼마나 조화를 이루려고 애를 썼는지를 금방 안다. (…)자연에 대한 순응을 우리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심성이라는 독단에서 흐뭇해하지 말라. 우리 옛 건축의 지혜를 배웠으면 우리가 오늘날 망쳐 놓은 우리 도시를 회복하는 일에나 힘쓰라.”(237쪽)

 “‘통섭’이니 ‘경계를 넘어서’라고? 다 사치스러운 말이다. 이 좋은 말을 작품 설명에 쓰려고 하기보다 현실에서 해결하시라.”(196쪽)

 서울대 건축학과 김광현 교수가 한국 건축계에 대한 비판을 꾹꾹 눌러 담았다. 저자는 우리 건축가들이 ‘절제의 미학’이니 ‘침묵의 미학’이니 하는 관념적 언어로 그럴듯한 말만 퍼부어 왔다고 꼬집는다. 한마디로 ‘우리의 건축이 허학(?學)’이라는 주장이다. 건축을 과대망상증으로 포장하는 대신 그 본질에 집중하는 게 ‘지금 이곳’의 일상을 풍요롭게 해줄 것이라고 일갈했다.

 김 교수는 그 본질을 ‘공동성’(commonness)이란 단어로 요약한다. 모든 사람이 갖는 건축에 대해 갖고 있는 공통의 감각과 의지를 가리킨다. 일례로 경북 영주 부석사의 새벽 예불 체험에서 ‘그것’을 보았다고 했다. 사찰 창호지문에 비추던 불빛과 앞마당에서 조용히 움직이던 스님들의 몸동작에서 부석사의 존재를 있게 한 그 무엇, 즉 건축 이전의 건축을 발견했다고 한다. “건축을 짓는 일은 곧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는 공동성을 불러내는 일”이라고 했다. ‘좋은 건축’은 ‘발명’하는 게 아니라 우리 마음 속에 있는 공동의 가치와 이미지를 ‘발견’하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한국 건축계의 오늘이 궁금하다면 반드시 참고해야 할 책이다. 건축에 대한 우리의 인식, 제도와 정책 등을 두루 짚었다. 공공건축 문제의 핵심도 찔렀다. 그는 한강의 세빛섬을 가리키며 이렇게 썼다. “디자인 수준을 말할 단계가 아니다. 오히려 왜 이 건물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물 위에 둥둥 떠 있기만 하는가를 물었어야 마땅했다.”

이은주 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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