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한잔] 인터넷 연재 만화 '바보'1,2권 펴낸 강풀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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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인기 만화가 강풀씨

인터넷을 즐기는 사람치고 만화가 강풀(31.본명 강도영.사진)을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지 싶다. 하루 100만~200만 명이 그의 인터넷 연재 만화를 본다. 책으로도 나온 '순정만화'의 경우 조회 수가 3200만 건이 넘은 것으로 기록됐다. '순정만화' '아파트' '바보'와 현재 연재중인 '타이밍'까지 그의 장편은 모두 영화로 만들어지고 있다. 명실공히 인터넷 최고의 인기만화가지만 "운이 좋았다"고 말하는 그다. 두 권의 책으로 묶여져 나온 '바보'(문학세계)를 들고 10일 오후서울 천호3동 그의 작업실을 찾았다.

아담한 오피스텔에 들어서니 흰 고양이, 검은 고양이가 한 마리씩 있고, 짧은 머리의 김민철(26)'어시'(보조작가를 말하는 만화계 용어)가 반갑게 맞는다. "지금까지는 저 혼자서 작업했는데 '타이밍'부터 어시를 뒀어요. 그동안 하루 네 시간 정도 밖에 못 잤는데 이젠 여섯 시간 정도는 자는 편이죠."

방안을 씩 둘러보니 여느 만화가의 방과는 달리 만화책이 많이 없다. "제가 다른 만화는 잘 안 봐요. 오히려 영화를 많이 보는 편이죠. '영화의 한 장면이다'생각하며 만화를 그리고 이야기를 풀어나가거든요."

이야기라-. 그래, 그의 작품에는 이야기가 있다. 그것도 질긴 인연의 실타래로 서로 얽히고 설킨…. '순정만화'의 성공요인을 들자면 순진한 30대 회사원과 되바라진 여고생, 연상의 여인과 그녀를 흠모하는 남고생, 그리고 이들이 오가는 골목길의 노점상 남녀가 제각각 만들어내는 감정을 딱딱 맞아떨어지게 풀어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그의 유연한 이야기 풀어내기는 '바보'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주인공인 바보 승룡이와 동생 지인, 승룡이가 좋아했던 지호, 승룡의 친구 상수, 상수를 좋아하는 희영은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면서 가슴 깊은 곳에 있는 '순수'를 되찾는다. 구심점에는 승룡이가 있다.

"인연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사람과 사람이 만나면서 서로를 믿고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 것 말이죠."

그의 작품에는 악당이 없다. 나쁜 사람도 알고 보면 착한 구석이 있다. 그는 "나쁜 사람을 보면 '저 사람도 원래는 저러지 않았을 텐데'하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면을 만화에 담는 거죠"라고 말한다.

그의 작품은 대사가 많지 않다. 그림도 툭툭 떨어져 있는 느낌이다. 그 공간을 내레이션이 채우고 있다. 내레이션을 읽다 보면 어느새 독자는 주인공과 하나가 된다.

"이야기가 안 풀리면 저도 주인공의 마음속으로 들어가요. 내가 얘라면 어떻게 할까. 그랬더니 글쎄 자기들끼리 말을 하면서 얘기를 풀더라고요. 정말 신기한 경험이었어요."

그는 이야기 구조를 거의 완벽하게 짜놓고 만화를 시작한다. 그러지않으면 중간에 네티즌들의 성화에 견딜 수 없다고 한다. 그는 인터넷 만화가 생명력을 갖기 위해서는 다양한 연령층이 즐길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향후 계획을 물었다. "10월 11일에 '타이밍'이 끝나거든요. 그 후엔 좀 쉬려고요. 일본에서 일해달라는 요청도 검토해 볼 생각입니다." 이 남자, 알고보니 치밀하다. 그 치밀함에 지금 한국 만화계가 희망을 걸고 있다.

글.사진=정형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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