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연하는 폴란드를 가다<하>|조용한 거리엔 격정과 우수가 깔려-김창규<국민대교수·체육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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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폴란드가 목각과 목기로 유명하다기에 하루는 호텔 맞은편에 있는 기념품상점을 기웃거렸다. 개인상점이라 그런지 조그맣긴 했지만 진열장 안에는 제법 다양하게 물건들이 정돈돼 있었다.
진열된 상품중 제주도의 돌하루방을 연상시키는 목각들이 특히 시선을 끌었다. 이 나라의 민속입상으로 모조한 갖가지 목각의 얼굴들은 모두 일그러진 표정을 하고있는 것이 퍽 인상적이었다. 기다란 뿔피리를 부는 얼굴, 현악기를 부둥켜안고 연주하는 얼굴이나 턱을 괴고 명상에 잠긴 모습이나 한결같이 고통과 우수에 젖어 있었다.
산악지대가 없고 사방이 모두 확 트인 평원으로 천연적 요새라곤 없는 폴란드는 항상 주변민족들의 노략질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불우한 지형의 나라였다. 1천여년전 폴란드라는 나라가 생긴 이래 러시아를 비롯해 독일·오스트리아 등에 번갈아 국트를 찢겨가며 지도가 바뀐 것만도 여러차례나 되고, 유럽지도에서 아예 폴란드란 나라가 1백여년동안 말살된 상태가 최근세까지 계속됐었다.
호텔에 도착한지 얼마 되지않아 대회관계자와 얘기를 나누다 폴란드에 관한 인상을 묻기에, 와보기전엔 별 생각을 다했으나 이사람 저사람 만나보니 순박하다는 느낌이 들고 거리도 생각보다 평화스러워 보인다고 말했더니 『그럴 것』이라며 덤덤한 표정이었다.
계엄령아래의 폴란드는 내국인이건 외국인이건 금기사항이 많은 나라인 것은 틀림없다. 외국인의 경우 특히 기념사진을 많이 찍게 마련인데 잘못했다가는 곤욕을 치르는 수가 있다고 했다.
이린 제한에 신경을 써가며 조심스럽게 행동해서 그런지 시내 어디를 돌아다니건 누구와 만나건 눈에 띄게 압박감을 받는 일은 없었다.
폴란드 사람들도 물론 체제와 시국문제로 기본적인 제약을 많이 받는 것 같지만 놀라울이만큼 개방적인면도 이따금 눈에 띄었다.
밤11시까지 술마시며 춤출수 있는 장소가 카토비체에 단 한군데 있었다. 선수단이 묵고있는 카트비체호텔 맞은편의 첸트룸이라는 이름의 댄스홀이었다. 3백명쯤 수용할 수 있을 이 댄스홀은 항상 초만원이었다. 밖에서는 자리가 비는 것을 기다려 들어가려는 젊은이들로 웅성거리곤 했다.
선수단 임원 몇 사람이 하루저녁 호기심에 그곳을 구경하기로 했다. 밤9시30분쯤이었는데 안에서 문을 걸어 잠그고 손님이 나오는대로 입장시키고 있었다. 안에서 지키는 사람들이 우리 일행을 보고 외국인 대접을 해서인지 문을 열어주었다.
그러자 문앞에서 기다리던 한 젊은이가 자기는 한시간이 넘도록 기다리고 있는데 꽤 늦게 온 우리들을 먼저 들어가게 하느냐고 항의했다. 미안하기 짝이 없었지만 두번 다시 기회가 없을 것 같아 안내인을 따라 들어갔다.
무대위에서는 2개의 악단이 현란한 조명아래 번갈아가며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다. 무대아래 홀에서는 숱한 젊은 남녀들이 최신 유행의 로크리듬에 맞추어 신바람나게 몸을 흔들어대고 있었다. 영어가사로 노래하며 연주되는 음악은 모두가 팝뮤직이나 디스코리듬이었다.
자리를 잡고 보트카를 잔으로 주문해 마시고 있는데 웨이터가 찾아와 다른 테이블에 있는 아가씨들이 함께 춤을 추자고 청한다고 전했다. 27∼28세쯤의 젊은 여자 셋이었다. 얘기가 오고가다 한자리에 앉게됐다. 영어와 독일어를 제법 할줄 아는 여자들이었다.
우리는 한참 마시며 얘기했다. 좀 비약일는지 모르지만 성도덕 문제에 관한한 폴란드도 다른 서구사회와 큰 차이가 없는 것 같았다. 길거리에서의 젊은 남녀들의 자연스런 포옹과 입맞춤이라든가, 댄스홀에서 낯모르는 남자의 청을 받고 금세 친해져 포옹하는 모양들이 서투르거나 낯설지 않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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