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식회계 고백합니다" 두산산업개발 '매출 2797억 과다계상' 공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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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산업개발이 1990년대 중반 이후 2700억원대의 분식회계를 했다고 8일 고백했다. 기업이 과거 분식회계를 고백한 것은 대한항공에 이어 두 번째로 최근 정부가 분식회계를 자진 수정토록 하는 방침에 따른 것이라고 두산 측은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나 두산산업개발은 최근 오너 형제들 간에 불거진 경영권 분쟁의 핵심 계열사였다는 점에서 분식회계를 고백한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두산산업개발은 이날 95년부터 2001년까지 건설공사 매출액 중 2797억원을 과다 계상했다고 공시했다. 도로공사를 저가에 수주한 뒤 제값을 받은 것처럼 꾸미는 등의 분식을 했다는 것이다. 두산 측은 이 과다 계상분을 올 상반기 재무제표에 반영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이렇게 되면 지난해 말 기준 280%였던 부채 비율이 650%로 높아진다.

두산 측은 "최근 취임한 박용성 회장이 업무 보고 과정에서 이를 발견하고 해소토록 지시했다"고 밝혔다. 두산산업개발 김홍구 사장은 "당시엔 건설 업체들의 과당 경쟁으로 손실이 발생했고, 이를 재무제표에 그대로 반영할 경우 회사의 존폐가 불투명해져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업계에선 이번 고백이 박용오-용성 회장 형제 간에 벌어진 경영권 분쟁의 연장선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분식회계 기간은 박용오 회장이 그룹 회장을 맡고 있던 시기와 겹치기 때문이다. 박용오 회장 측은 지난달 박용성 회장 등이 1700억원 규모의 비자금 조성과 외화 밀반출을 했다고 폭로했다. 이에 박용성 회장 측도 분식회계로 반격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두산 관계자는 "과거의 잘못을 시정하려는 것이지, 박용오 전 회장과 관련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분식 고백에 대해 시장에선 대체로 '단기적으로는 악재, 장기적으로는 호재'라는 반응이다. 이날 증시에선 개장 초기 두산산업개발 주가가 가격제한폭까지 떨어졌다가 점차 회복됐다. 굿모닝신한증권 조봉현 자본재 팀장은 "두산산업개발은 다른 건설사에 비해 매출채권이 지나치게 많아 분식회계 의혹이 있었다"며 "의혹이 해소된 만큼 자산건전성이 좋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또 기업 스스로 과거 분식에 대해 밝히는 사례는 앞으로 더 늘어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집단소송제가 시행되면서 2004년 이전에 이뤄진 분식회계는 자진 수정하면 소송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는 정부 방침 때문이다. 자진신고가 늘면 증시는 당분간 출렁거리겠지만 회계 투명성이 높아져 전반적으로 기업에 대한 신뢰도는 높아진다는 것이다.

양선희 기자

◇두산산업개발=㈜두산의 지분 22.8%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두산이 두산중공업의 지분 41.5%, 두산중공업이 두산산업개발의 지분 30%를 보유하고 있어 순환출자 구조를 이루고 있다. 2000년 업계 순위 20위권 밖에서 맴돌던 두산건설이 고려산업개발을 인수하면서 9위로 뛰어올랐고 아파트 건설사업을 벌이며 알짜 회사가 됐다. 이에 박용오 회장이 올 봄부터 이 회사의 계열 분리를 요구하면서 경영권 분쟁이 불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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