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호주제, 불평등 없도록 개정돼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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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국무회의가 '호주제 폐지 추진 기획단'을 구성하기로 확정했다. 반세기 가까운 세월 동안 지속돼온 가족법 개정운동의 역사상 최초의 범 정부 차원의 기획단이다.

우리는 이같은 정부의 결정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우리의 가족문화가 훼손되지 않는 범위 안에서 남녀차별적 법조항들이 개선되기를 기대한다.

이태영 등 헌신적인 여성운동가들을 위시한 여성계의 땀과 눈물로 세차례에 걸쳐 민법 개정이 이뤄졌음에도 불구하고 호주제로 인한 불평등한 조항은 여전하다.

'집안의 어른'격인 호주를 나이든 어머니를 제치고 아들이나 손자가 차지하는 불합리성뿐이 아니다. 재혼가정이 겪는 고통은 더 크다.

세계 3위의 이혼율로 세 쌍이 결혼하면 다른 한 쌍이 이혼하고 있는 현실에서 재혼가정의 자녀들이 서로 성이 달라 정체성에 혼란을 겪고 있다. 자녀에 대한 양육권과 친권을 모두 지닌 어머니는 호주의 동의없이 재혼가에 자녀를 입적시키지도 못한다.

헌법의 정신은 성이 다르다는 것은 차이가 될망정 차별이 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출산율마저 한 자녀 시대인 세상에서 남성과 여성을 차별하는 낡은 이분법적 사고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5천년간 켜켜이 쌓아올린 우리의 가족문화가 송두리째 흔들려서는 안될 것이다. 여성계 일각에서 주장하는 1인1적제나, 자녀의 부모 성 선택 같은 급진적인 제도는 전통적인 가족문화의 근간을 위협하는 것들이다.

기획단은 호주제 폐지 반대론자들이 염려하는 가족사 내지 가족의 붕괴도 막고, 단독가정 등장 등 변화하는 가족의 흐름도 함께 수용할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하는 데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호주제의 이름은 살리더라도 연장자나 어머니가 자동으로 호주가 되도록 한다거나, 호주제 대신 부부와 미혼자녀를 기본단위로 하는 기본가족별 편제 방안은 그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한 술에 배가 부를 수는 없다. 산술적인 남녀평등에 집착함으로써 실리를 놓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