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도청 '핵폭풍'] 군인들 '사생활 도청' 공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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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도청 공포에 시달리는 건 군도 예외가 아니다. 장교 등 웬만한 직업군인이라면 자신의 전화를 누군가 엿듣는다고 생각한다. 공용 전화에는 '통신보안' '이 전화는 엿듣고 있습니다'라고 적혀 있다.

군에서 행해지는 전화 감청 등은 군사비밀이 밖으로 새나가는 것을 방지하는 게 일차 목적이다. 기무사령부는 군내 모든 유선전화 통화의 15%가량을 감청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의심되는 통화에 대한 내용을 미처 확인하지 못하면 보안 담당자가 확인을 요청해 오기도 한다. 또 중요한 비밀은 반드시 비화전화로 말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비화전화는 통화자 각자의 전화기에 암호화 및 암호해독 장치가 부착돼 있어 도청해도 알아들을 수가 없다.

중요한 회의 내용이 외부로 새나가지 못하도록 특수회의실도 운영하고 있다. 국방부 청사 내에 있는 이 회의실에는 납으로 만든 벽 등 이중 삼중의 특수장치가 돼 있다. 말소리의 음파에 의한 벽의 미세한 진동이나 전파까지도 차단된다.

장교와 부사관 등 직업군인들이 정작 우려하는 것은 사생활이 포함된 전화 통화다. 기무사 등 군 수사기관이 현역 군인과 군 공무원의 비리를 광범위하게 조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의 비리자료는 진급과 보직 등 인사에 불이익으로 작용한다.

이에 따라 진급 시기가 가까워지거나 중요한 자리에 있을수록 전화 통화를 극도로 조심한다. 가족이나 친구 등과 전화하는 도중 개인 생활이 노출되는 복잡한 내용이 나오면 대개 "만나서 얘기하자"며 전화를 끊기 일쑤다.

이 때문에 주요 보직에 있는 장교들은 휴대전화를 두 개씩 가지고 다니는 게 일반화됐다. '017'로 시작되는 군 전용 이동통신회선의 휴대전화 외에 다른 사람 명의로 된 별도의 휴대전화도 갖고 다닌다. 퇴근 후에는 군 전용 휴대전화는 아예 끄고 개인용 휴대전화만 켜놓는 경우도 있다.

최근에는 불법 전화도청에 대한 비판이 나오면서 군내에서 규정이 명확하지 않은 감청으로 파악한 비리 내용의 인정 문제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김민석 군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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